우영우가 좋아하는 혹등고래, 선사시대 바위그림에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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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가 좋아하는 혹등고래, 선사시대 바위그림에도 있을까

입력
2022.08.27 11:00
수정
2022.08.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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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동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편집자주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23>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주암면(그림 있는 면) 왼쪽 윗부분에 새겨진 바다동물들. 오른쪽은 천전리 각석에 신라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부지갈문왕에 대한 내용이 새겨진 부분.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한 사람 작품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남긴 합작 그림이다. 물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평평한 바위 면에 쪼거나 파서 구성했다.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바위 캔버스다. 아마도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 바위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유일한 역사기록인데도, 발견 이후 반세기 동안 보존대책을 고민했다. 울산시의 식수원인 사연댐의 수위 상승으로 인한 주기적 수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최근에야 궁극적인 보존책을 마련했지만, 아직도 지역사회의 불만이 있어 심히 걱정된다. 이 바위 그림의 압권은 바로 고래 그림들이다. 고래들의 모양이 다양한데 울산 앞바다에 출몰하는 여러 종류의 고래를 묘사한 듯하다. 그 안에 요즘 대단히 인기 있는 TV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혹등고래는 없을까?

대곡천 반구대(盤龜臺) 가는 길

지도상 반구대와 대곡리의 주요 지점(왼쪽)과 반구대 주변 굽이치는 대곡천의 모습. 암각화는 사진 상단에 보이는 하류에 위치한다.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울산을 가로질러 동해로 들어가는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은 산지를 흐르면서 구불거리고 좁고 급한 사면으로 둘러싸인 골짜기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강을 따라 구곡(九曲)이나 오곡(五曲)이라는 이름들이 등장한다. 이 지역을 대곡(大谷), 즉 큰 골짜기라고 부르지만 직접 보면 널찍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이 강을 따라 고대부터 수많은 명사들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최고의 명승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반구대(盤龜臺)는 하늘에서 보는 지형이 거북이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절벽에 한자로 반구대라고 적어 두었다. 경치가 좋아 그 건너편에 집청정(集淸亭) 또는 반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이곳을 찾은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그린 그림이 권(權)씨 가문에 전해 오는 서첩에 남아 있다.

김경진 암각화박물관장 일행이 반구대 암각화 벽면(분홍 색조의 면)을 보는 모습. 오른쪽은 대곡박물관에 전시된 겸재 정선의 반구대 그림. 조선 중기 권섭(權燮)이 만든 공회첩(孔懷帖) 안에 있다.

선사시대 암각화의 위치는 이보다 하류인데 이웃한 반구대의 지명으로 유적 명칭을 붙인 셈이다. 서쪽에서 오면 이곳의 역사를 담은 대곡박물관으로 연결되지만 천전리길을 따라 들어오면 각석 유적으로 연결된다. 천전리 각석 유적에서 반구대까지 산길로 걸어가면 거리가 짧지만, 차를 타면 산을 한 바퀴 돌아가야 한다.

선사 풍경의 감동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암각화

한여름 반구대마을 입구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암각화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의 풍경은 동행이 "와, 공룡시대네!"라고 외칠 정도로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올 법한 원시숲 같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도 원시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그동안 세계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경관 조성에 힘쓴 덕일 것이다. 길의 끝에 경비 초소가 있고 그 맞은편에 암각화가 있는 암벽이 보인다. 작은 광장에는 암각화 설명판이 있고 설치된 망원경으로도 볼 수 있지만, 암각화박물관의 김경진 관장이 동행하여 개울가로 내려가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구름 낀 날씨여서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사십여 년 전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을 탁본 뜨면서 ‘아! 누가 이 깊은 골짜기에 이것을…’ 이라는 탄복이 저절로 나오던 당시 감동이 다시 배어나왔다.

선사 예술가들의 눈썰미

암각화 주암 면(그림 있는 면)을 찍은 사진과 실측도.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길고 네모난 판판한 수직암벽의 바위 면을 쪼거나 긁어서 만든 그림들이 260여 개가 모여 있다. 사람, 뭍동물, 새 그리고 거북이와 고래 등이 보인다. 단순히 동물의 모습을 음각한 것도 있지만 성기를 세운 남자의 모습, 그물에 잡힌 호랑이, 작살에 찔린 고래 등등 하나의 에피소드를 표현한 그림도 있다. 여러 사람이 탄 배를 그린 것도 있다. 동물들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것들은 종까지 알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만큼 선사시대 예술가들이 눈썰미가 있었다는 것이고, 조각을 하는 감각이나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현기법도 다양한 점이 있는데 외형을 선으로 표현하거나 형체의 내부를 쪼거나 갈아서 볼륨을 표시한 것도 있고 일부 동물 표현에는 소위 뢴트겐 기법, 즉 내부를 선으로 구획한 것도 있다.

향유고래 모형의 울산암각화박물관 전경. 암각화 내용을 설명하는 실감 영상을 볼 수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 제공

이러한 다양한 기법들이 개인적인 취향인지 시대적으로 예술적인 생각의 변화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지고고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인간이 그러한 표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현대 인간의 여러 가지 표현행위에서 보편적인 이유를 찾아 내는 것이다. 바위그림은 현대의 고 장욱진(張旭鎭) 화백의 표현을 연상하게 한다. 똑같은 이유에서 그린 것은 아니어도 그러한 표현이 이뤄지는 심리적인 과정을 유추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수많은 고래 중에 혹등고래는 없을까?

반구대 그림의 왼편에는 고래 그림들이 압도적이다. 울산 장생포 앞바다는 다양한 고래가 출몰하는 곳이고 오늘날에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산중에 고래그림을 그린 걸 보면, 선사시대 작가들은 분명 고래사냥을 하던 사람들 집단에 속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단히 구체적인 포경(捕鯨, 고래잡이) 이벤트를 표현한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작살이나 부표 같은 포경기술을 표현했는가 하면 어미고래의 아기고래 사랑을 표현한 듯한 그림도 있다. 큰 고래와 아기 고래를 오버랩, 즉 중첩기법으로 표현하고 있어 모성애를 보여준다. 그러한 고래의 모성애는 드라마에 등장한 혹등고래가 현대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다양한 고래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작살 박힌 고래, 귀신고래로 추정되는 새끼 업은 고래, 피부색상의 변이를 선으로 표현했다고 추정되는 혹등고래, 북방긴수염고래다.

암각화는 다양한 종류의 고래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바위 면의 왼쪽에는 수직으로 다른 고래보다 훨씬 큰 80㎝에 달하는 것이 있는데, 가장 큰 고래 종류로 '대왕고래'라고 불리는 흰수염고래를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럼 혹등고래는 없을까? 고래 그림은 대체로 왼쪽 구역에 많이 나타나는데 배에 기다란 선을 여러 개 표현한 것이 혹등고래란다. 그리고 가슴에 길게 지느러미 표현을 한 것 중에도 혹등고래가 있단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진은 혹등고래의 특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이곳 추상화된 바위그림 표현에서 고래의 종을 맞추기는 어렵겠다. 다만,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이다.

그림과 글자 천지, 대곡천 풍경

천전리 각석 유적의 전경(윗줄)과 각석 맞은편 바위에 남아 있는 공룡발자국.

대곡천을 신라왕이 서석곡(書石谷)이라고 명명했다. 당시에 이곳 선사시대 바위그림들을 봤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신라시대 명문들이 들어 있는 천전리 바위그림은 보았을 터이니 '바위그림의 골짜기'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동양에서는 한비자에 이어 두 번째로 고대의 바위그림을 인지했음을 남긴 기록이란다. 대곡천에는 천전리(川前里)의 각석이나 반구대 선사그림들뿐 아니라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유적을 비롯하여 많은 선현들의 방문기록이 전해지니 명승으로서의 기운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전리의 각석에 새겨진 '심맥부지(深麥夫知)'는 바로 신라 진흥왕을 가리킨다. 왕이 되기 전 이곳을 찾은 것으로 보이고 왕이 된 후에도 찾았다. 또 다른 왕족이나 화랑들도 여기에 와서 글을 남긴 걸 보면 분명 심상치 않은 장소였을 것이다. 삼국통일의 기운이 이곳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천전리 각석에 그림이 새겨진 모습. 오른쪽은 각석에 새겨진 명문을 탁본하고 문자로 해독한 것.

천전리의 서석(각석)과 반구대 선사암각화는 시대적으로나 내용에선 관련성이 없지만, 사람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오게 한 이유는 같았을 것이다. 산과 강이 만드는 경관에서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고 사람들의 소원이 이뤄지게 만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바닷가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와서 시간을 들여 가며 기도하고 그림을 남겼을 것이다. 중생대에 형성된 두터운 퇴적암 속에 발자국으로 남아 있는 공룡의 혼도 그런 기운을 풍긴다. 처용이 나타난 울산앞바다, 중국 태화지(太和池) 용의 주문으로 만든 태화사에서 이름을 딴 태화강, 대곡천으로 이어지는 용과 고래, 그리고 산신령이 된 호랑이들의 이야기는 이 골짜기가 언제나 신령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염원의 성소, 세계유산으로

세계의 곳곳에 고대 바위그림들이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선사유적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바위그림이 차지한다. 반구대 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역사책인 셈이고 그 내용 역시 가히 세계에서 유례를 보기 어려운 구성이다. 지난 세기 70년대 초에 발견되어 1995년 국보로 지정된 이후 아직 보존문제가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지만, 대곡골짜기의 신비한 경관과 그 속에 담겨진 많은 스토리들, 세계유산이 된 반구대바위그림이 세계인의 K관광명승으로 등장할 날을 기대하는 마음이 골짜기를 벗어나는 아쉬움을 앞선다.

글·사진=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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