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일상 곳곳, 마약의 엄습
'대마 합법' 태국서 관련 제품 봇물
'공짜 여행' 미끼, 마약 대리운반 증가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열린 '마약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4가지 방법(마약-나뽀)' 캠페인 일환으로 설치된 태국 가게 부스에 마약소주 등 대마 식품이 전시돼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2/08/14/00d8aa00-1518-4933-adf0-4b6c1d736ef7.jpg)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열린 '마약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4가지 방법(마약-나뽀)' 캠페인 일환으로 설치된 태국 가게 부스에 마약소주 등 대마 식품이 전시돼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
11일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객으로 붐볐던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동남아시아 휴양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가게 앞에 대마를 뜻하는 초록색 잎을 그려 넣은 광고판이 서 있었다. ‘그린 메디신(GREEN MEDICINE·녹색 약)’이란 큰글씨를 뒤로 하고 가게에 들어서자, 제품 판매대에 있던 한 여성이 물었다. “태국에 왔으니 아주 특별한 음료인 ‘니르바나’ 드릴까요? 한국에는 없으니까, 여기서 마셔 보세요.”
이 가게는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대마를 합법화한 태국의 현지 모습을 옮겨 놓은 곳이다. 대마가 들어간 아이스크림·맥주·음료수 등 현재 태국에서 판매 중인 '대마 식품'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건 한 음료수였다. 소주병처럼 생긴 초록색 병에 담긴 데다, 병을 두른 표지에 니르바나란 한글까지 적혀 있어 꼭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만 파는 소주처럼 보였다. 니르바나는 열반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현삼공 관세청 국제조사과 사무관은 “마약소주라 불리는 이 제품은 대마 성분이 함유된 알코올도수 0%의 음료”라며 “태국을 여행할 땐 대마를 뜻하는 깐차(kan-cha)나 깐총(kan-chong)이란 말이 적혀 있으면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치도록 행복한 피자(CRAZY HAPPY PIZZA)’처럼 제품명이나 광고 문구에 '행복(HAPPY)'이란 단어가 쓰인 식품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대마 성분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 가지 더. 네덜란드에선 커피를 마시려면 커피숍 대신, 카페에 들어가야 한다. 커피숍은 합법적으로 대마초를 구입하고 피울 수 있는 곳이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소주 등 여행 곳곳에 스며든 마약
공항 출국장을 배경으로 한 그 옆 공간(부스)에선 한 남자가 갈색 여행용 캐리어를 끌면서 서성였다. 이날 해외여행을 떠나는 고교생 변현석군이 체험 부스에 들어서자 그가 와서 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혹시 비행기 타러 가시나요? 그러면 옷과 중요한 서류가 담긴 이 가방 좀 아내에게 전달해 주세요. 사례는 얼마든지 할게요.”
변군이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계속 따라오며 마약을 몰래 숨긴 캐리어의 ‘대리 운반’을 부탁했다. 변군은 “오늘 부모님과 태국 여행을 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을 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고 말했다.
이상은 관세청이 이날 인천공항에 마련한 '마약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4가지 방법(마약-나뽀)' 캠페인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과 기자의 체험 장면을 담은 내용이다. 가상으로 미리 겪어 두면 잠깐의 판단 착오로 발생할 수도 있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해외여행길이 다시 열리면서 일반 국민도 의도치 않게 마약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①한 번쯤은 괜찮을 거란 생각에 현지에서 마약 식품을 섭취하거나, 관련 제품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 처벌받을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마약은 의외로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한 번은 괜찮겠지'하다 마약 사범 될 수도
18일 관세청에 따르면 연초부터 6월까지 국경 반입 단계에서 적발한 마약은 372건, 238㎏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662건·214㎏)보다 건수는 줄었지만 적발량은 오히려 11.2% 증가했다. ②'공짜 여행'을 미끼로 한 마약류 대리 운반 움직임이 확대되고, 대마류 제품 밀수가 늘어난 게 특징이다.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열린 '마약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4가지 방법(마약-나뽀)' 캠페인 부스에서 네덜란드 펍의 바텐더로 꾸민 한 직원이 대마 성분이 들어간 칵테일을 권하고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2/08/14/49c72058-a619-46a8-a98f-940c3f35139e.jpg)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열린 '마약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4가지 방법(마약-나뽀)' 캠페인 부스에서 네덜란드 펍의 바텐더로 꾸민 한 직원이 대마 성분이 들어간 칵테일을 권하고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
실제 항공 여행객에게서 적발한 마약량은 5월만 해도 3건, 0.02㎏에 불과했으나, 6월에는 10건, 4.9㎏으로 폭증했다. 서아프리카·남아메리카의 마약밀수조직이 중·장년층의 한국인을 포섭해 대리 운반하는 형태가 많았다. 대마 밀수는 환각을 일으키는 향정신성 화합물질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등이 함유된 제품을 들여오는 것으로, 대마 오일의 올해 상반기 적발량은 1년 전보다 71% 늘었다.
관세청은 공짜 여행을 미끼로 한 대리 반입과 ③해외 직구 외에도 해외 여행 시 마약류 섭취·구매, ④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익명성을 악용한 마약 거래를 주요 노출 경로로 보고 있다. 해외여행 성수기인 이달 말까지 주요 세관이 마약류 밀반입 근절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열린 '마약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4가지 방법(마약-나뽀)' 캠페인에 참석한 윤태식(왼쪽에서 두 번째) 관세청장과 연예인 윤택이 출국장을 돌며 마약류 밀반입 예방 안내를 하고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2/08/14/67a28778-c88a-4d9e-9fcb-57ec8b487990.jpg)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열린 '마약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4가지 방법(마약-나뽀)' 캠페인에 참석한 윤태식(왼쪽에서 두 번째) 관세청장과 연예인 윤택이 출국장을 돌며 마약류 밀반입 예방 안내를 하고 있다. 영종도=홍인기 기자
특히 여행지가 대마 합법화 국가라 하더라도 태국의 음료수 니르바나 같은 대마 식품을 현지에서 먹었거나, 관련 제품을 구매해 들여오면 적발 시 처벌받을 수 있다. 대마 흡연과 섭취는 마약류관리법 제61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마약 근절을 위해 태국 등에서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 여객을 대상으로 불시에 마약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있다”며 “해외여행 중 호기심에 한 번 경험한 것만으로도 마약 사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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