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들 오갈 데 없어 뜬눈으로 밤 지새워
임시거주시설 상당수 학교·관공서·경로당
수 개월 이상 생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중앙정부·지자체 협조 긴급주택 지원 필요
“침대매트리스 절반 높이까지 물이 찰랑거리는데 잠이 오겠어요? 뜬 눈으로 밤을 샜죠 뭐.”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사는 이모(56)씨는 8일 밤 집이 침수됐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물이 차오르는 통에 아들과 함께 겨우 집을 빠져 나온 것만도 다행이었다. 목숨을 건졌다는 기쁨은 잠시. 한밤중에 당장 잠을 청할 곳이 마땅찮았다. 양수기로 물을 일부 빼낸 뒤 집으로 다시 들어가 밤을 보냈다. 이후 이틀 밤은 경기 부천의 지인에게 신세를 졌다. 그러나 메뚜기 신세도 하루 이틀이다. 이씨는 11일 “집 수리에만 한 달은 넘게 걸릴 것 같은데 어디서 지내야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다수 임시거주시설은 "씻기도 힘든 곳"
115년 만의 물폭탄으로 침수 피해를 본 ‘반지하 이재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것도 괴로운데, 집을 복구하기까지 한두 달 동안 몸을 누일 공간을 찾는 일이 버거운 탓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학교나 관공서 강당에 임시주거시설을 마련하고 구호물품도 제공하고 있지만 이들은 선뜻 가기가 꺼려진다고 입을 모은다. 세면 등 기본 시설을 갖춘 곳이 별로 없어서다.
열악한 대피소 환경은 통계가 증명한다. 서울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현황’에 따르면, 임시주거시설 총 1,229개소 중 씻거나 잠을 잘 수 있는 곳은 44개소(3.6%)에 불과하다. 세수를 하려면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고, 시멘트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잠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다시 퍼져 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는 걸 겁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씨는 “며칠이야 괜찮지만 두 달을 임시대피소에서 머물기는 힘들다”고 했다. 신사동주민센터 강의실에서 만난 이재민 박모(53)씨도 “장소를 제공해줘 고마우나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자마자 휴대폰을 들고 숙소를 수소문했다.
"정부가 이재민 주거환경 보장해야"
이재민들의 귀가 솔깃할 법한 대책이 없는 건 아니다. ‘재난구호법’에는 이재민이 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임대주택 등을 최장 6개월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다수 이재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재난 발생 시점에 공실이 있어야 하고, 그마저도 수요에 비해 주택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단적으로 지난달 중부지방에 갑자기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본 경기 수원의 반지하 마을 50가구 중 공공임대주택에는 두 가구만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이재민들의 안전과 기본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임시주거시설 운영 규정을 개선할 필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차선화 시흥주거복지센터장은 “임시 거처는 생명과 직결된 부분”이라며 “재난으로 피폐해진 심리 회복을 위해서라도 국가가 안정적 주거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 충북대 주거환경학과 교수 역시 “해외에선 지역 숙박시설이나 공공기관 연수원 등을 임시주거시설로 필수 지정하는 등 일상적으로 재난에 대비한다”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합쳐 오랜 기간 거처가 없는 이재민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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