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폭우에 교통약자 불편 커져
지하철역 발 묶였는데 대체 교통 몰라
장애인 고역... "불편해도 치료받아야"
“중앙보훈병원에 어떻게 가야 합니까?”
전날부터 내린 전례 없는 폭우로 서울 곳곳의 교통이 마비된 9일 오전, 서울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에서 만난 정모(82)씨는 다급히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해 이날 오전 10시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로 했는데, 노량진~신논현 구간 열차 운행이 중단된 탓에 예약 시간을 지키지 못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역 안에는 별도의 대체 교통편 안내문이 없었다. 주변의 젊은 사람들은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수시로 검색하며 대안을 찾았지만, 사용법을 모르는 정씨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운행불가 안내문에 적힌 고객센터로 수차례 전화를 걸어봐도 연결은 되지 않았다. 기자가 정씨에게 교통편을 알려줬는데,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고 두 시간은 넉넉히 걸렸다. 강남 방향 버스 정류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본 그는 “이래선 시간을 못 맞추겠다”며 쓸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당황한 건 정씨만이 아니었다. 노량진역 안전관리실 앞은 직원들에게 교통편을 문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직원에게 “역사에 대체 교통편 안내문 등을 붙여놔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미처 만들지 못했다. 저희들이 나와서 안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오시면 다 설명을 해드리는데 문의가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역에 발이 묶인 유모(80)씨는 “젊은 사람들이야 어떻게든 간다지만,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는 대체 교통편을 마련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평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인 임모(76)씨는 “(지하철) 운행이 정지된 것도 제대로 안 알려주는데 그럴 겨를이 있겠느냐”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폭우가 쏟아지면 장애인들은 더 난감해진다. 궂은 날씨엔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지만 병원 치료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날 오후 노량진역 앞에서 만난 최두영(69)씨는 새벽부터 집을 나와 동작구 중앙대병원에서 신장 투석 치료를 받았다. 병원 인근 흑석역에 지하철이 서지 않아 노량진역까지 2.5㎞를 전동휠체어를 타고 왔다. 1시간 30분 넘게 이동하느라 몸이 녹초가 됐는데 엘리베이터를 찾느라 또 한참을 헤맸다. 한 손에 우산을 들었지만 온몸은 흠뻑 젖었다.
최씨는 “투석을 받지 않으면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 살기 위해 나왔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시설공단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도 이런 날씨엔 무용지물이다. 그는 “오늘 같은 날 콜택시를 부르면 5, 6시간은 그냥 버리게 된다”며 “힘들더라도 그냥 지하철을 타는 게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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