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대의 변수 2030 여성들은 누구?
3·9 대선 이후 입당한 20만 명 당원 중 다수
개딸 "대선서 혐오정치 방치에 절박해 참여"
커뮤니티·SNS서 후원 및 댓글 정화에 동참
"과격 문자 자제" vs "방해 않는 선에서 가능"
더불어민주당 유력 당권주자인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2030세대 여성을 이르는 '개딸'들이 전당대회 판세를 흔들고 있다. 3·9 대선을 전후로 민주당에 들어온 20만 명의 신규 당원 중 다수로, 전당대회 투표권이 없는 '입당 6개월 미만' 당원이지만 룰 세팅 과정에서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당심과 민심의 격차 해소를 요구하며 여론조사 반영 확대를 관철해낸 것은 대표적 사례다. 지난 1일 개설한 당원 청원시스템에서도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논란 속에서도 당헌 80조 개정 청원에 활발히 참여하는 등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의원을 넘어 민주당과 소통을 강조하는 이들의 활동에 그림자도 엄존한다. 이 의원과 다른 견해를 가진 비이재명(비명)계 의원들을 겨냥한 문자폭탄 등으로 건전한 토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친문재인계 홍영표 의원이 지방선거 패배 직후 '이재명 책임론'을 거론하자, 그에게 하루 최대 2,000통의 문자폭탄을 보내거나 지역사무실 앞을 '치매가 아닌지 걱정된다'는 대자보로 도배하는 등 집단 행동이 문제가 됐다.
당 안팎에선 이러한 과격한 집단행동을 '팬덤 정치'로 규정하고 있다. 팬덤 정치는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후 민주당의 쇄신 과제 중 첫손에 꼽히고 있는데, 이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될 경우, 이러한 팬덤이 민주당 지도부의 의사 결정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활동 중인 개딸 6명과 전화 및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게 된 배경과 활동 방식, 세간의 비판적인 시선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이대남' 쏠린 시선이 정치 참여 이끌어
인터뷰에 응한 6명의 개딸 중 4명은 현재 민주당원이다. 이 가운데 지난 2019년 입당한 B씨를 제외한 3명은 대선 직후인 지난 3월 민주당 입당 러시가 일던 시기에 입당했다. 이들 모두가 당초 민주당이나 이 의원을 지지해온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A씨는 "국정농단 국면에서 이재명 의원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내 삶이 나아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투표권을 가진 직후부터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B씨도 이번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 의원을 지지했다고 한다.
"‘개딸 현상’으로 2030세대 여성이 갑자기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배제돼 있던 이들이 이제야 목소리를 찾은 거죠."
20대 직장인 B씨
이들은 이 의원 지지 배경으로 '인권 변호사' 이력을 꼽았다. 이 의원이 젠더 의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한 것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젊은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대남' 의제가 크게 주목받은 반면, 여성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컸다는 것이다. F씨는 박지현 전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당과 이 의원을 지지한 이후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고 말했다.
E씨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혐오에 기반한 정치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는 것에 좌절했다"며 "이재명 의원이 '안티 페미니즘'에 편승했다면 대선에서 이길 수도 있었겠지만, (민주당) 전통 지지층인 젊은 여성을 대변하면서 정도(正道)를 걸으려고 한 점에 주목했다"고 했다. C씨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는 이 같은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의원이 수용 가능한 페미니즘 의제를 도입할 수 있는 후보라 기대했다"고 했다.
검찰개혁 입법 강행은 정치권 안팎의 논란에도 개딸에게는 '정치적 효능감'을 얻은 계기였다. E씨는 "대선 직후 검찰 수사권의 오남용과 보복 수사 우려, 권력기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에 검찰개혁 법안 통과가 기억에 남는다"며 "의원실에서 2030세대 신규 지지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간담회는 당의 미래와 비전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고 했다.
댓글 정화·문자폭탄 등에 '구심은 없다'는데...
개딸들의 주요 활동은 이 의원이나 민주당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고, 카드뉴스나 사진, 동영상 등을 편집해 커뮤니티와 SNS 등에 공유하는 일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경우엔 의원들에게 현안 관련 문자메시지 등 '총공'(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단체행동을 하는 것)하거나 지지 의원들을 후원하고, 관심 현안과 관련한 집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특히 이 의원에게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뉴스를 댓글로 반박하는 활동을 '정화'라 부른다. A씨는 이와 관련해 "왜곡된 기사가 나면 화가 났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며 "나 하나라도 (이 의원에 대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댓글을 달게 됐다"고 말했다.
개딸들은 '왜곡된 기사'라고 했지만, 이 의원 측의 오락가락한 해명이 논란을 자초하기도 한다. 지난달 이 의원의 부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자, 이 의원은 트위터에 "20년 넘도록 꾸준하게 새롭지도 않다. 실천하는 동지들이 있어 든든하고 행복하다"라고 썼다. 경찰의 과도한 수사로 사망한 것을 언론 등이 무리하게 자신과 엮고 있다는 뜻이었다.
개딸들은 이에 "언론 날조 기사들, 화나서 다들 열심히 정화하고 있어요. 좋은 것만 보게 해드리고 싶어요" 등으로 반응했고, 이 의원은 "고맙잔아"라고 화답했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정치자금 지출내역을 토대로 해당 남성이 김씨의 운전기사로 급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 의원 측은 "배우자실 선행 차량을 운전했다"고 말을 바꿨다.
"조직한다? 사람을 모은다? 이런 표현이 저희는 낯설어요. 개딸이라는 ‘조직’은 없어요."
30대 직장인 A씨
과격한 '정치 팬덤'이라는 시선에는 선을 그었다. 특히 개딸의 배후에 이를 조직하고 있는 구심점이 있다는 의구심에는 "오해"라고 부인했다. A씨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끼리 자발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D씨는 "커뮤니티에 검찰개혁 법안 집회 소식이 올라와서 참석한 적이 있다"며 "내가 여유가 있을 때 참여했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개딸들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친이재명(친명)계 주자들을 최대한 당선시키고 비명계 주자들을 낙마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분산투표'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조직적인 행동에 의구심을 품는 이유다.
문자폭탄 등 '강성 팬덤'에 대한 온도차
'개딸'이란 호칭은 이 의원의 블로그에서 "딸 가진 아빠들이 부럽네요"라는 댓글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어감이 과격하다는 지적에도 B씨는 "'개딸'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우리의 목소리가 생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성 팬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은 것은 이들의 문자폭탄 등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문자폭탄을 경험한 일부 의원들은 일상은 물론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고 호소하고 있다.
개딸 사이에서도 문자폭탄에 대한 미묘한 온도차가 있었다. A씨는 "멸칭이나 욕설, 비하 발언은 지양하지만 사람이니까 실수할 때도 있다"면서 "다만 상대의 인권을 침해하고 상처를 주는 발언은 하지 말자는 편"이라고 했다. 반면 E씨는 "인신 공격이나 의원 일정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문자를 통한 의사소통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평가에 대한 입장도 갈린다. 이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등을 비판한 박 전 위원장에게 등을 돌린 이도 있는 반면, 박 전 위원장의 요구에 냉랭한 반응을 보인 이 의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들도 있다. 단 '2030대 여성=박지현 지지'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C씨는 "(박 전 위원장은) 좋은 소리만 하는 지지자들과 선택적 소통을 하면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극악한 팬덤'이라고 매도한다"며 "그가 대선에서 보여준 용기는 존경하지만 최근 억지스러운 활동을 보고 실망했다"고 했다. 반면 F씨는 "민주당을 지지하게 된 계기가 박지현 영입이었고, (민주당이) 우리 세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 같았다"면서도 "젊은 여성 정치인의 행보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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