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지 말고 사랑하는 이와 오늘을 즐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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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지 말고 사랑하는 이와 오늘을 즐기라

입력
2022.07.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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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즈음, 그 녀석은 컴퓨터 게임을 자기와 같이 하자고 종종 졸라댔다. 무슨 게임인가 들여다보고 시도도 해 보았지만 난 전혀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코피 나도록 시간 강의를 하던 때라, 시간이 생기면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 나와 가족의 미래를 위해 더 유익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과의 컴퓨터 게임은 미뤄두었다. 녀석이 5학년 즈음, 아들에게 접근하여 보았다. 같이 게임을 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더 이상 어린 2학년짜리가 아니었다. 아빠와 게임을 같이 할 나이도 아닐뿐더러 나 말고도 더 재미있게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와 동생이 생긴 것이다. 결국 나와 아들의 일생 가운데 같이 게임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그 ‘시간’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아홉 살의 아들은 내 일생에 딱 한 번뿐이었던 것이다.

전도서는 유독 즐기라는 말을 자주 한다. 즐기는 이유는 인생이 허무하기 때문이다. 애써보았자 인간의 지력으로는 근처도 가기 어려운 신을 알겠다고 수고하지 말라 한다. 사람의 모든 능력과 업적을 일순간 앗아갈 수 있는 죽음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이 지혜가 있다고 해서 오래 기억되는 것도 아니다. 지혜가 있다고 해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슬기로운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사람도 죽는다. 그러니 산다는 것이 다 덧없는 것이다. 인생살이에 얽힌 일들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다.”(전도서 2:15-17).

신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생은 덧없기에 즐기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의 한평생이 짧고 덧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니,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일임을 내가 깨달았다! 이것은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전도서 5:18). “나는 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허락받은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언제나 기쁨이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다.”(전도서 8:15).

이쯤 되면 반론이 따를 수밖에 없다. 사는 것이 각박하고 전쟁터 같은데 즐기라니, 지금 누구 염장을 지르는가? 그런데 전도서는 어느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와 재산을 주셔서 누리게 하시며, 정해진 몫을 받게 하시며, 수고함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니, 이 모두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전도서 5:19).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이루어 놓은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늘이 부여해준 선물 때문이라고 한다. 여름에 와이키키 해변을 가고 겨울에 스위스에 가서 스키를 타는 것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선사해 준 것이 많다. 맑은 하늘의 푸르름, 집 앞 공원의 정겨움, 비오는 날의 블루스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부와 재산이다.

단 조건이 있다. 반드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과 즐겨야 한다. 이유는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이다. 아빠와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아홉 살 아들은 당신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홉 살 아들과 축구하며 행복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한 번 놓치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스무 살의 아들과 비싼 돈을 주고 토튼햄 경기를 볼 수는 있겠지만, 아홉 살 아들과 가졌어야 할 즐거움과는 같을 수 없다.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사라지는 것의 극치는 죽음이다. 그래서 전도서는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한다(전도서 9:4). 미루지 말고 사랑하는 이들과 바로 오늘을 즐기라. 좋은 사람하고는 집 앞 개천을 같이 걸어도, 거기가 오아시스가 된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연인을 내일 또 볼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지 말라.

기민석 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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