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돌아온 무지갯빛 서울광장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3년 만에 돌아온 무지갯빛 서울광장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입력
2022.07.16 19:39
수정
2022.07.16 19:46
0 0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 스케치]
경찰 펜스 사이 두고 열린 맞불 집회에도
연대와 응원 넘쳐 흘렀던 모두의 축제

16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2022 제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뉴스1

"퀴어문화축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정말로 크고 행복한 행사예요! 그런데 대체 왜 울타리 밖에서 이 축제를 반대하는 외침이 더 큰지 모르겠어요."

16일 오후 1시 30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를 보기 위해 발걸음한 미국인 헤일리 뮤렐(27)씨와 영국인 조지아 윌스(27)씨는 경찰이 관리를 위해 설치한 가림막 밖의 풍경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퀴어축제로 향하는 길목마다 축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차별금지법 반대' '동성애 반대' 등의 피켓을 들고 섰고,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스피커의 볼륨은 경찰 펜스를 가뿐히 넘어 광장을 침범했다. 그들은 무지개 모양으로 꾸민 화이트보드에 서툰 솜씨로 '넌 너 자체로 완벽해'라는 문장을 내보이곤, "축제 바깥의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며 머물고 있는 미국인 헤일리 뮤렐(27)씨와 영국인 조지아 윌스(27)씨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넌 너 자체로 완벽해'라고 쓴 화이트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오프라인에서 열린 이번 퀴어축제에 참석하는 인파로 서울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손깃발, 머리끈, 마스크 등 무지갯빛 소품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 많은 시민들은 잔디밭에 앉아 오후 2시부터 진행된 환영무대를 즐겼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함께 온 참가자나 휠체어를 타고 잔디밭을 누비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눈길을 끄는 '드랙 아티스트(사회적으로 고정된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 메이크업과 패션, 퍼포먼스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가)'는 단연 인기. 시민들의 사진 촬영 요청 세례가 쏟아졌다. 마치 커다란 무지갯빛 꽃송이 같은 의상을 입은 드랙 아티스트 섬머(36)는 "다 같이 사는 세상인 만큼 누군가를 해치고 혐오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서로 이해해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치장했다"고 설명했다.

16일 드랙 아티스트 섬머씨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미 기자

퀴어축제에 세 번째 참가한 한 서울 시민(24)은 "스스로를 퀴어로 정체화한 지 5년 정도 됐는데, 그 기간 내내 축제가 쉽게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과연 이 사회가 성소수자를 같은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공간 안에서 성소수자로 불리는 다른 시민들을 보니 위안이 되고, 나도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같은 시각 퀴어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과 덕수궁 사이 세종대로는 차량이 통제된 채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맞불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환영행사가 열리며 인파가 몰리기 시작한 오후 2시가 되면서 축제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늘자 동성애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 준비위원회’, 예수재단, 샬롬선교회 등은 "동성애 축제를 허용한 오세훈 시장 물러나라" 같은 구호를 외치며 볼륨을 높였다.

성민정(42)씨는 반대편 집회를 가리키며 "캐나다에서 퀴어축제에 참여했을 때는 국무총리급 인사가 앞장서서 퍼레이드를 같이 걷는 모습에 감격 받았었다"며 "모든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는 소수자성을 갖고 있기에 서로 안아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축제의 기본 정신이라 생각한다"꼬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신나는 축제의 바로 옆에서 쏟아지는 혐오 발언을 들으니 화가난다"고 덧붙였다.

축제를 기획한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성소수자는 코로나19 이후 더 외롭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었다"며 "오늘은 너무나 사람들이 기다려온 자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존재가, 각자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라며 "내가 보잘 것 없어도, 세상이 동성애는 물러가라고 해도 우리는 존재 자체로도 아름답다"고 했다.

서울 도심 행진이 예정됐던 오후 4시쯤,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광장 밖 맞불집회의 앰프에서 울려 퍼지는 "동성애는 죄악" 같은 혐오 발언이 빗소리와 함께 윙윙거렸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폭우에도 우산을 펼치고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종로, 명동을 거쳐 3.8㎞ 거리를 행진했다.

오후 6시쯤 행진에 나선 시민들이 서울광장으로 돌아왔을 때, 장대비는 멈추고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흐린 날씨에 무지개는 뜨지 않았지만, 시민들이 이날을 기념하며 착용한 온갖 작은 소품에서 수만가지 무지갯빛이 발했다.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3년 만에 제23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린 가운데 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라이브 이슈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