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일해도 괜찮아요, 성과로 말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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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일해도 괜찮아요, 성과로 말하면 되니까요"

입력
2022.07.1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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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 유호현 대표
사장은 미국, 직원들은 뉴욕 캐나다 한국에
근태 감시하면 '애 취급'... 결과만 책임지면 끝


편집자주

세계 최고 테크기업 본사와 연구소가 모인 실리콘밸리. 테슬라 구글 애플이 둥지를 튼 기술 천국이죠. 빅테크의 혁신이 세상을 바꾸지만, 결국 혁신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됩니다. 이서희 특파원이 도전 정신과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실리콘밸리 숨은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가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 마테오의 공유오피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2020년 7월 문을 연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Oxopolitics)는 설립 2년이 지난 지금도 사무실이 없다. 못 만든 게 아니라, 아예 만들 필요가 없었다. 직원 25명 전원이 자율근무를 하기 때문.

대표만 미국 실리콘밸리에 상주하고, 다른 직원들은 뉴욕 캐나다 필리핀 한국 등에 흩어져 일한다. 그러다 보니 화상회의를 하는데, 가끔은 해변을 배경으로 회의에 들어온 직원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당신 왜 거기 있느냐"고 따지지 않는다. 올해 초 이 회사에 합류한 한 사람은 아직도 자기 회사 대표 얼굴을 직접 본 일이 없다. 무려 직책이 '부사장'인데도 말이다.


"직원들 일하는 게 안 보이면 불안하지 않나요?"

12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에게 물었다. 대답은 간명했다. "제가 감시할 필요 있나요? 직원들은 제가 아닌 본인을 위해서 일하는 건데요."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한 유 대표가 전혀 한국스럽지 않은 근무 방식을 만든 건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창업 전까지 트위터와 에어비앤비에서 7년간 개발자로 일했다. "한국에선 의사 결정권이 위계에 따라서 주어지는데 실리콘밸리는 역할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더라고요." 그는 그래서 동료들에게도 자신의 말을 '이행'하지 말고 '참고'하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자신의 말도 비전문가의 '의견'일 뿐이니까.

근무 방식, 시간, 할 일까지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꿈의 직장 아닌가. 그러나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건, 결정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로부터 존중받는다는 달콤함의 대가는 생각보다 매울지 모른다. 다음은 유 대표와의 일문일답.

-근무방식이 무척 도전적이네요.

"한 군데 모여 일한다고 좋은 성과 낼 수 있나요? 에어비앤비에서 일할 때 '회사가 날 너무 믿는 것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때 동료가 '우리 다 어른이잖아'란 말로 정리해 버리더군요. 사무실에 앉혀놓고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면 그 사람은 아이란 뜻이죠."

-모든 직원이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믿는 것도 이상적이지 않나요?

"결국 성과로 명확하게 드러나더라고요. 저흰 모든 직원이 6개월에 한 번씩 동료들 평가를 받아요. 평가가 좋으면 승진하고, 아니면 강등도 되죠. 입사 계약에 3개월 후 재계약 조건이 들어 있어요. 일종의 수습 기간인 거예요. 3개월 동안 지켜보고 성과가 없으면 재계약을 안 해요. 그렇게 떠난 사람도 많습니다."

-직원들 만족도는 높나요?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죠. '왜 날 뽑아 놓고 아무 지시도 안 하냐'고 화를 내기도 하고요."

-유명 회사 엔지니어였는데, 창업에 나선 이유가 있나요?

"해고를 당했거든요. 에어비앤비에서 이용자가 예약 숙소까지 어떤 교통편으로 이동하면 좋을지 연구하는 팀을 맡았는데, 팀 자체가 없어졌어요. 여기선 해고가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제 발로 나가면 퇴직금이 없는데, 해고당하면 위로금으로 몇 달치 월급이 나오거든요. 검증된 개발자들에겐 스카우트 제안이 쏟아지기도 하고요. 제 경우는 일단 몇 달 버틸 돈과 시간이 생겼으니까 '실리콘밸리에서 보고 배운 것을 한국 정치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평소 생각을 그 참에 구현하기로 했어요."

정치 데이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는 이용자의 성향에 따라 진보부터 보수까지 5가지 동물 부족으로 표현한다. 옥소폴리틱스 제공


-뭘, 어떻게 적용한 건가요?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다양한 의견을 치열하게 나누면서 의사결정을 해요. 그런데 한국 정치는 '진보냐, 보수냐'로만 너무 양극화돼 있죠. 우리 편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의견도 반대하고 보죠. 커뮤니티들도 정치 성향이 갈리다 보니 그 안에선 다른 의견이 나오지 못해요. 그래서 강경진보부터 강경보수까지 다 모여 각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옥소폴리틱스 이용자들은 성향에 따라 5부족으로 나뉘고, 각자 부족 게시판에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다른 부족 게시판을 볼 수도 있어요."

-이용자들 반응은요?

"10대부터 40대까지 젊은 층 참여도가 높아요. 월 활성 이용자 수는 18만 명까지 늘었고요. 한국에선 생소할 수도 있는데,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죠. 참여가 늘수록 정치권의 주목도도 커질 겁니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려고 할 때,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옥소폴리틱스를 찾게 되겠죠. 그러면 우리 의견이 실제 의사결정에 반영될 거고요."

통상 스타트업은 혹시 모를 불이익에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반면 유 대표는 정치 한복판으로 과감히 뛰어들길 택했다. 사회의 근본에 정치가 있고, 정치가 바뀌어야 진짜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우리 모두가 정치를 피하고, 혐오하는 게 아니라 정치를 하는 세상이 돼야 해요."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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