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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러'도 지워라"... 우크라의 문화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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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러'도 지워라"... 우크라의 문화 저항

입력
2022.06.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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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별 특파원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④


우크라이나가 '침략국 러시아 지우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4년 돈바스 전쟁 이후 반러시아 정서가 민심의 저변에 깔려 있다가 이번 전쟁으로 불이 붙었다.

극심한 전쟁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젤렌스키 정부는 반러시아 감정을 애국심 자극에 활용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인들은 분노를 발산하는 표적으로 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시가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앱)에서는 러시아어로 된 도로, 건물 등의 명칭을 바꾸기 위한 주민투표가 이뤄진다. 키이우시 앱 캡처

우크라이나 키이우시가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앱)에서는 러시아어로 된 도로, 건물 등의 명칭을 바꾸기 위한 주민투표가 이뤄진다. 키이우시 앱 캡처


곳곳 '러시아 도로·건물명' 바꾸기... "정부앱으로 참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시는 러시아어가 사용된 도로·건물 이름을 바꾸기 위한 주민 투표를 진행 중이다. 주민 투표는 시가 운영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절차는 이렇다. 러시아어를 지워야 할 대상이 발견되면 → 전문가들과 주민들이 어떤 우크라이나 이름을 붙이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내고 → 투표와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한다.

'슬라우호도르스카'라는 러시아 지명을 딴 키도로도 개명 대상에 올라 있다. 새 이름 후보는 '데니스 안티포우'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인 하르키우시 외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지난 5월 숨진 우크라이나군 중위의 이름으로, 최근 주민 투표에서 1등을 차지했다. 한국 유학생 출신인 그는 우크라이나 키이우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입대했다.

이 같은 작업은 키이우 이외의 여러 지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하르키우는 최근 "러시아 예술가∙작가 등의 이름이 붙은 거리와 광장 등의 이름 200여 개를 모조리 바꿀 것"이라고 발표했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크레멘추크의 한 쇼핑몰이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되어 있다. 크레멘추크=우크라이나 정부 제공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크레멘추크의 한 쇼핑몰이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되어 있다. 크레멘추크=우크라이나 정부 제공


의회도, 기관도... "러시아 문화는 No"

우크라이나 의회도 팔을 걷어붙였다. 의회는 최근 1991년 이후 제작된 러시아 음악을 공공장소 등에서 트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러시아어 책 제작과 유통도 금지하기로 했다. 법안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명만 거치면 발효된다. 대학 등도 적극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하르키우의 한 대학은 22일 "러시아 문학부를 폐쇄하고 슬라브어 문헌학과를 두겠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분노 해소' 정부는 '애국심 고취' 필요

이 같은 반러시아 움직임은 침략국에 대한 증오를 연료 삼아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 역사와 문화 등을 공유하는 것을 수치로 인식하는 것이 우크라인의 공통 정서가 된 것이다. 26일(현지시간) 키이우 미사일 폭격 현장에서 만난 한 여성은 "전쟁 전에는 인위적 반러시아 혹은 탈러시아 기조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러시아와 아무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가 절대다수"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문화를 파괴하는 데 대한 분노도 우크라인들을 자극하고 있다. 보로댠카에서 만난 한 시민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유명 시인 조각상의 머리 부분을 조준 사격해 총알을 관통시킨 것을 보고 "우리 문화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6월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보로댠카에서 우크라이나 유명 시인 타라스 셰우쳰코 기념비에 총탄이 박혀 있다. 보로댠카=신은별 특파원

6월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보로댠카에서 우크라이나 유명 시인 타라스 셰우쳰코 기념비에 총탄이 박혀 있다. 보로댠카=신은별 특파원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언어와 문화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 국가와 영토를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믿고 있었다. 현지 언론은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젤렌스키 정부도 이러한 적개심을 반기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진 데다 러시아 쪽으로 전세가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전쟁 책임론이 본격 제기되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정체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키이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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