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파워 1위 옥주현, 동료 배우 고소하자 비난 화살
옥주현, 김호영 고소 취하에 통화까지
최근 뮤지컬계에 유례없는 사회적 관심이 쏠렸다. 배우 김호영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에서 시작된 '인맥(친분) 캐스팅' 논란 때문이다. EMK뮤지컬컴퍼니의 뮤지컬 ‘엘리자벳’ 캐스팅 발표 후 배우 김호영이 '옥장판'을 운운하며 히로인 옥주현의 캐스팅 입김 가능성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고, 옥주현은 김호영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뮤지컬계 선배 배우들이 '정도가 깨진 것'이라는 호소문을 낸 후 옥주현이 SNS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김호영과 화해의 통화를 나누면서 열흘 넘게 지속된 갈등 국면은 일단락됐다.
두 배우 간 갈등이 뮤지컬계 전반의 문제로 커진 배경에 대해 여러 말이 오가지만 이를 스타 의존 제작 관행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옥주현의 인맥 캐스팅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뮤지컬계 '티켓 파워' 1위 여배우로서 그간 과도하게 목소리를 높여 온 데 대한 누적된 불만의 발로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20년 만에 30배로… 빠른 성장 이끈 스타 캐스팅
2000년 매출 140억 원 규모였던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년 만에 연간 4,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고 공연 시장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며 공연계를 떠받치고 있다.
여기에 한몫을 한 게 스타 캐스팅이다. 뮤지컬계는 2001년 말 '오페라의 유령' 라이선스 초연을 통해 '뮤지컬 산업화'의 길을 열었지만 2010년대 들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에 대중음악계 스타인 아이돌을 대거 캐스팅하며 새로운 관객 유입을 도모했다. 가수 김준수의 뮤지컬 데뷔작인 '모차르트'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전 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스타 캐스팅은 흥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스타 캐스팅이 본격화하면서 2014년에는 50편 넘는 뮤지컬에 아이돌이 출연하기도 했다.
한 역할에 두 명 이상의 배우가 캐스팅되는 한국 고유의 '멀티플 캐스팅'도 관객의 스타 선호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여러 유명 배우를 내세움으로써 각 배우의 팬덤을 모두 흡수할 수 있어서다. 이는 같은 작품을 반복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이 생겨난 배경이기도 하다. 더블(2명), 트리플(3명), 쿼드러플(4명), 퀸터플(5명) 캐스팅에 이어 8월 개막하는 '서편제'의 여주인공 '송화' 역에는 6명이 캐스팅됐다.
뮤지컬 생태계 위협하는 배우 중심 체제
스타 캐스팅은 뮤지컬 시장 외형 성장에 기여했지만 '스타 권력화'의 우려도 낳고 있다. 흥행을 좌우하는 스타 배우 섭외 경쟁은 과열됐고 주조연 배우 간 출연료 격차와 대우 문제도 빚어졌다. 제작사가 높은 출연료와 함께 유명 배우의 과도한 요구도 울며 겨자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제작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옥주현이 '엘리자벳' 캐스팅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거듭 밝혔음에도 인맥 캐스팅 의혹과 비난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뮤지컬계 관계자는 "이번 공연 사례는 아니지만 옥주현은 과거 특정 배우를 캐스팅에서 빼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공연은 동료배우나 스태프 간 협업이 중요한 종합예술이어서 옥주현이 김호영에게 험한 표현을 쓰고 고소를 감행했던 것도 반감을 키웠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스타 캐스팅은 새로운 스타 발굴을 어렵게 하는 폐해도 있다. 주역 배우층을 넓히지 못하고 특정 배우들에 대한 의존도가 다시 높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스타 캐스팅으로 작품 수익은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1회 제작비 중 톱배우 한 명에게 지불되는 비용이 30%에 이르면서 수익 분배 악화와 뮤지컬 생태계를 병들게 하는 폐해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며 "배우의 캐스팅 관여 시도는 뮤지컬 생태계 왜곡의 단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대중예술에 필연적인 스타 시스템
뮤지컬을 비롯해 한정된 관객을 대상으로 큰 제작비를 투입해야 하는 공연 예술계에서 스타 마케팅은 외면하기 힘든 선택이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중반 영화·방송계가 양적 성장과 함께 스타 권력화 문제로 몸살을 앓았듯 뮤지컬계도 성장통을 겪고 있다"며 "한국 관객의 스타 선호도가 유독 높아 시장 분위기가 금세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오페라계의 슈퍼스타 플라시도 도밍고가 권력을 이용해 수십 년간 동료 여성 예술가들을 추행하고도 은폐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작자들이 극장을 먹여 살린다는 이유로 이를 눈감아 왔기 때문"이라며 "관객 수요가 있는 한 제작사에서 스타 출연자를 앞세운 스타 마케팅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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