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혼 악습에 떠밀린 이집트인 사라, 천신만고 끝 손에 쥔 F2 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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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혼 악습에 떠밀린 이집트인 사라, 천신만고 끝 손에 쥔 F2 비자

입력
2022.06.20 05:00
수정
2022.06.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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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
이집트 출신 페미니스트 활동가 사라 아잠
조혼 피해 딛고 여성 위한 정치 활동 펼치다
2017년 한국으로 도망... 난민 인정까지의 여정

편집자주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입니다. 1992년 한국이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한 지 올해로 30년. 하지만 긴 시간 동안 난민 인정률은 1퍼센트대에 불과할 정도로, 난민 인정에 인색한 나라입니다. 올해 한국일보 '허스펙티브'는 특별히 '젠더 박해'에 주목합니다. 세계 난민의 날 기획 '히잡에 가려진 난민'은 여성으로 태어나 본국에서 폭력과 억압에 시달리다 한국으로 도망쳐 온 두 여성의 이야기를 '내러티브 저널리즘' 방식으로 담고, 4편의 기사를 통해 한국 사회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화두를 던집니다.

2일 서울 은평구 난민인권센터에서 이집트 출신 난민 사라 아잠(27)이 '난민 환영(refugees welcome)'이라는 구호가 적힌 손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17년 한국에 온 사라는 2020년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서재훈 기자

‘한시라도 빨리 이 나라를 떠나는 수밖에 없겠어.’

2016년 12월,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한 월세 아파트에 보안당국 요원들이 들이닥쳤을 때 이집트인 사라 아잠(27)은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의 끝에 닿았다. 자신에게 닥친 온갖 위협을 겪으며 완전히 지쳐 버렸기 때문이다. 한때 15만 명 정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를 보유했던 사라는, 이집트에서 이름난 페미니스트 정치 활동가였다.

이미 사라는 두 차례 보안당국의 조사를 받고 수감된 전적이 있었다. 6개월 전쯤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탈이슬람 종교’를 선언한 뒤 1주간 구금된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두 번째 붙잡혔을 땐 20일 뒤에나 풀려났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종교를 가질지, 어떤 젠더로 자신을 정체화할지 결정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글을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라에게 닥친 위협은 공권력만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에 친기독교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곧바로 집 주소와 휴대폰 번호, 사진 등이 공중에 유포됐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살해 위협이 쏟아졌다. "이곳에서 당장 떠나!" 거리에서 사라를 알아본 낯선 이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협박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급기야 페이스북 계정은 누군가의 해킹으로 사건 한 달 전 폐쇄됐다. 페미니스트 정치 활동을 활발히 하던 2016년 한 해에 모두 일어난 일이었다.

사라는 황급히 휴대폰으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나라를 찾았다. 비자를 발급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이집트인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너무나도 생소한 이름 ‘KOREA’를 검색했다. 총기소지도 허용되지 않고, 여권(女權)도 이만하면 높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사라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특정한 나라 혹은 문화권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 더 나아가 페미니스트 활동을 한 경력이 난민으로 인정될 사유가 될까.

“많은 아랍 국가는 법률 자체가 성차별적이기에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법원에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나 차별이 법으로 보장되는 권리로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을 ‘국가 안에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은평구 난민인권센터에서 만난 사라가 말했다.

조혼 피해자였던 페미니스트 활동가

16일 서울 은평구 난민인권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사라가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 난민 인정 후 2년, 사라는 한국에서 아랍어를 가르치거나 통역을 하며 세계를 연결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이혜미 기자

14세가 되던 해, 부모는 사라에게 조혼을 강요했다. 18세가 되기 전 3명의 아이를 낳았다. 이집트 아동법은 18세 이하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지만, 때때로 악습은 제도에 우선한다. 불법이었기에 제대로 된 계약서도 쓰지 않고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가족의 연을 맺었다.

“14, 15세의 어린 소녀가 하고 싶은 일도 많을 텐데 강제로 결혼을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법 또한 소녀를 보호하지 않는 현실은 무척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잇따른 결혼과 출산에 남편의 가정폭력까지. 15세의 사라는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혼을 결심한 뒤,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 우연히 페미니즘을 접했다. '나 혼자만 겪는 일이 아니었어.' 그가 여성 인권에 눈을 뜨게 된 계기다.

더 이상 기도와 단식을 하지 않기로 한 사라는 이슬람 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2014년, '이슬람을 배신한 이를 집 안에 둘 수 없다'는 남편의 이혼 선언으로 5년 결혼 생활이 끝났다. 변절한 딸을 가문의 수치로 여긴 아버지는, 딸을 집으로 부른 뒤 6개월 동안 집 안에 감금한 채 구타했다. 감금 4개월째, 그는 가까스로 탈출해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경찰들은 몸의 구타 흔적을 보고도 다시 아버지에게 딸을 돌려보냈다. 또 두 달이 흐른 뒤, 식구들이 부주의한 틈을 타 사라는 끝내 집을 탈출했다.

“다른 아랍 소녀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이집트에 조혼 피해자들이 많지만, 자신의 경험을 입 밖으로 이야기하는 여성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 악습이 더는 묻히지 않도록 글을 써 가시화하려 노력했죠. 딸들을 강제로 결혼시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의식을 고취하는 글을 주로 썼어요. 그러다 상당히 많은 여성이 제 글을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소녀들의 혁명(Egypt Girls’ Revolution)’ ‘페미 허브(Femi Hub)’ 그리고 ‘슈퍼 위민 무브먼트(Super Women Movement)’. 그가 몸담은 이집트 내 페미니즘 정치 단체다. 이 단체에서 사라는 어린 소녀들이 쉽게 페미니즘을 익힐 수 있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거나, 다양한 플랫폼에 배포되는 콘텐츠를 제작했다.

특히 사라는 과거의 자신처럼 거주지에 문제가 생긴 여성을 돕기 위해 기꺼이 아파트를 개방했다. 이집트에는 가정폭력과 여성 억압을 피해 집을 떠난 여성들을 포용하는 쉼터가 없기 때문에 공간을 내어준 것이다. 2016년 12월의 그날, 자신의 집에 보안당국이 들이닥치기 전까지의 얘기다.

우여곡절 끝 도착한 한국, 트라우마가 된 난민 심사 절차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라는 작은 방에 있을 때면 꼭 문을 열어 둔다. 그러나 난민 심사가 이뤄졌던 1평 남짓 인터뷰실에서 "제발 문을 열고 진행하자" 호소했지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서재훈 기자

“난민 심사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끔찍(terrible)’했어요. 난민 심사가 아니라 범죄 수사 같았거든요.”

2017년 2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사라에겐 '난민 인정 절차'라는 중대한 과제가 남아 있었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 겨우 영어로 된 정보를 더듬어 난민 신청서를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매 과정이 난항이었다고 사라는 회상했다.

3~6개월에 한 번 갱신해야 하는 난민 신청자 비자(G-1-5)를 보고 기꺼이 채용해주는 곳은 없었다. '활동 허가'를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어, 난민 신청자들은 저임금 단순 노무 직종으로 내몰린다. 논문 ‘한국에서의 난민 여성의 삶과 인권(2018·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은 '난민'과 '여성'이라는 이중 차별로 인해 난민 여성은 남성에 비해 경제적 자립 측면에서 훨씬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고 분석했다.

경기 안산의 알루미늄 공장, 화성의 치킨공장, 택배 등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1년 넘게 난민 심사만 기다렸지만, 학수고대한 면접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심사관이 같은 질문만을 반복했는데,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심사하기 위한 것보다 일관적이지 않은 진술을 유도하는 의도로 느껴졌다고 한다.

“'이집트에서 정치운동을 했던 유명한 페미니스트다'라고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관은 제가 겪은 일을 '가족에게서 경험한 사적 폭력의 문제'로 축소하려 했어요. 정부의 표적으로 위험한 처지에 놓인 사람인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했죠.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도 자꾸만 가족 이야기로 돌아가 질문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첫 번째 불인정 사유서의 내용도 대부분 '아버지의 문제'인 것으로 적혀 있어요."

난민법은 요청이 있을 경우 같은 성별의 심사관이 배정되도록 하고 있으나, 사라는 정확한 고지를 받지 못해 남성 공무원과 심사를 진행했다. 법무부의 난민인정절차 가이드북에 따르면,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의 동석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라는 1차 심사에서 '난민 불인정' 결과를 통지받았다. 이의 신청 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은 사라는 2020년 난민으로 인정되어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16일 서울 은평구 난민인권센터에서 사라가 자신의 외국인 등록증(F-2)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신분증 일부를 종이로 가린 채 촬영했다. 이혜미 기자

난민심사 과정에서 성인지적 해석과 접근을 권고하는 국제적 흐름에 따라, 법무부도 '형식'에 있어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가 법무부에 정보공개 청구한 자료(5월 말 기준)에 따르면, 난민전담 공무원 중 1차 난민심사 담당자 65명 가운데 여성은 47명(72.3%)으로 과반을 훌쩍 넘는다. 난민 전문 통역인 역시 80.1%가 여성이다.

문제는 '내용'이다. 젠더 박해 주장을 적절하게 심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젠더 박해 심사의 특수성을 인지하고 위험에 처한 여성과 성소수자 등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올해 비공개 교육용 문서인 '젠더 관련 난민지위심사 안내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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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에 가려진 난민>

① '여자라는 이유' 조국서 억압... 한국 와 히잡 벗었지만 또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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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조혼 악습에 떠밀렸던 이집트인 사라, 천신만고 끝 손에 쥔 F2 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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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여성, 성정체성, 성적지향... 난민 인정 사유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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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한국 난민보호 수용력 189개국 중 119위... 젠더 가이드라인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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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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