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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석학 신기욱 교수 "민주화 운동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 후퇴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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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석학 신기욱 교수 "민주화 운동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 후퇴 '아이러니'"

입력
2022.06.12 19:00
수정
2022.06.12 20:18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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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美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인터뷰
美서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영문 출간
비자유주의·포퓰리즘·양극화 위협 경고"
14일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한국 사회' 세미나

미국에서 신간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양극화의 위협(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을 펴낸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가 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미국에서 신간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양극화의 위협(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을 펴낸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가 9일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시민항쟁으로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고 직선제를 쟁취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은 어느새 온데간데없다. 경제 상황은 물론 진영과 젠더, 세대 등 한국 사회가 겹겹의 양극화로 몸살을 앓으면서 민주주의 퇴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미 석학인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쇼렌스타인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APARC) 이름으로 지난달 미국에서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양극화의 위협(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 The Threats of Illiberalism, Populism, and Polarization)’을 영문으로 출간한 것도 한국의 민주주의 쇠퇴에 대해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경제적·정치적 양극화 위협에 직면해 있고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결정적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분석한 이 책은 안병진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 빅터 차 미 조지타운대 정치학과 교수, 래리 다이아몬드 미 스탠퍼드대 정치학과 교수 등 한국과 미국의 여러 학자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편집은 신 교수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맡았다. 출간을 기념해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민주주의와 한국사회'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리며, 한국어 번역본은 올가을에 출간될 예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 만에 한국에 온 신 교수를 9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스탠퍼드대에서 20년간 한국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미국 내 한국학 연구를 이끌어온 신 교수는 "해외에서 고국의 대선과 권력 이양 과정을 보는 마음은 다소 착잡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기를 거치며 퇴보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후퇴해 왔다"며 "민주화 운동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선 민주주의 회복의 사명을 갖고 있다면서 강골 검사와 반페미니즘 이미지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은 포퓰리즘...선악 논리에 기초한 반엘리트주의"

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한국 민주주의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비견할 만큼 위기라고 보나.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쇠퇴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제3의 민주화 물결'의 성공적 사례였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의 박근혜 정부 때 후퇴하기 시작했다. '촛불 정신'에 기반한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 시기 민주주의는 오히려 더 후퇴해, 이해도 안 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미국 사회가 전에 없이 두 쪽으로 갈라졌듯 문재인 정부 때 양극화가 심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리더로서 매력이 있다기보다 정권 교체의 최적임자여서 야당 후보가 됐던 점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 미국 상황과 비슷하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도덕적 우월주의다. 문재인 정부의 주축인 민주화 운동 세력은 반대 세력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규정하는 선악 논리에 빠졌다. 상호 인정이라는 민주적 규범의 핵심을 망각한 것이다. 한국은 식민지와 분단의 근대사를 겪으며 집단을 중요시하는 민족주의에 밀려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려웠다. 여기에 민주화 운동 세력은 군부 독재와 싸우느라 자유주의를 경험하고 학습할 기회가 없었고, 다수주의와 민주주의를 혼동했다. 자유주의의 빈곤이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문제라는 것인가.

"잘못한 사람이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성격이 강했다. 과거에는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방만한 재정 지출을 떠올렸지만 21세기 포퓰리즘의 성격은 반엘리트주의 또는 반다원주의다. 엘리트를 공격한 트럼프주의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전방위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됐고 선악 논리에 기초했다. 이 과정에서 다원적 자유민주주의를 위축시켰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를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보는데.

"윤석열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는 다르다. '비주류·이단아'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은 '주류 중의 주류'다.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비슷하다. 딕 체니, 도널드 럼스펠드 등 아버지 조지 H. W. 부시 행정부의 각료들과 손잡은 점이 한덕수 국무총리,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등 '올드보이'들의 귀환과 닮았다. 그런 면에서 예측이 어려웠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예측이 가능하다."

"윤 대통령, 국제무대서 활약하려면 반페미 이미지 빨리 벗어나야"

신간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양극화의 위협’ 표지

신간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비자유주의, 포퓰리즘, 양극화의 위협’ 표지

-정치적 갈등을 치유할 과제를 안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한 달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임기 첫해 정도는 평가 이전에 일단 긍정적으로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외에선 강골 검사, 반페미니즘 이미지로 비치고 있다. 당장 검찰 편중 인사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다원화된 사회에서 검찰 출신 인사를 대거 발탁하는 게 정부 운영에 보탬이 될지 의문이다. 운동권 인사가 요직을 차지해, 집단 사고에서 벗어난 다른 사고가 나오기 어려웠던 문재인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반페미니즘 선거 전략을 썼다는 지적이 오해라고 주장했는데.

"지난 3월 윤 대통령 당선을 알리는 AFP통신 기사의 헤드라인은 '반페미니스트 정치 신예'였다. 지난달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남성 편중 내각'을 지적한 것도 윤 대통령의 젠더 감수성 부족에 대한 여러 외신의 관심이 반영된 결과다. 국제사회는 페미니즘이나 젠더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려면 반페미니스트 이미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표준화된 노동력이 중요한 산업화 시대와 달리 지금은 이질적 노동력과 새로운 사고가 요구되는 시대다. 여성적 시각이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이번 정부에서 '동아시아 민주화 선도국'의 명예가 회복될까.

"더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과거 군사 독재나 공산주의 혁명과 같은 급진적 방법이 아닌, 민주적 절차로 당선된 지도자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서서히 후퇴하고 있어 현 상황이 더 심각할 수 있다. 학자로서 글을 쓰고 공론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별, 세대 등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는 '생활 정치'에 참여할 때 좁은 의미의 정치도 변하지 않겠나. 어찌 보면 그게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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