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1000조원의 '선물'과 '계산서'

입력
2022.06.06 04:30
22면
0 0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손경식 경총 회장, 추 부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총리-경제단체장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손경식 경총 회장, 추 부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공동취재사진) 뉴시스

"기업 활동에 불편을 겪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같은 기업인의 사면도 적극 협조해 달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2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 말이다. 이날은 경제 6단체 대표들이 윤석열 정부의 경제 수장인 추 부총리와 가진 첫 간담회가 열렸다. 정권 초기 늘 있는 자리이고 보통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잘해 봅시다' 같은 말을 주고받곤 했기 때문에 이날 손 회장의 요청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특히 일주일 전 삼성을 시작으로 국내 11개 그룹이 경쟁하듯 5년 동안 1,000조 원 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대기업들은 문재인 정부를 빼고는 최근 정권 초기에 적지 않은 금액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전 정권 때와 비교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해마다 평균 200조 원 이상을 쓰겠다는 계획은 유례없는 일이다. 그 시점도 대통령 간담회나 해외 순방 등 큰일이 있을 때 내놓던 것과 달리 특별한 이벤트도 없는 상황에서 '깜짝' 발표라는 점도 이채롭다.

새 정부는 대기업의 역대급 투자 계획을 '선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경제단체장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요구 사항을 쏟아냈다. "주 52시간제도와 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 규제를 비롯한 복잡한 준조세격 임금제도, 환경제도 등을 개선해 달라"(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법인세 인하와 수입 탈당 관세 적용을 확대했으면 한다"(이관섭 대한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등 목소리가 나왔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정책 관련된 내용으로 과거 정부 초기에도 등장했던 민원이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 신동빈 회장의 사면은 '특별'하다. 재계에서는 윤석열 정부 첫 사면이라 할 수 있는 8월 광복절 특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남은 두 달 동안 재계에서 같은 요구는 계속 나올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다음 날 "삼성의 최고 경영진이 재판 때문에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면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사면 필요성을 주장했다. 준법감시위는 국정 농단 사태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이 부회장에 대해 사법부가 국가 경제를 위한다는 이유로 처벌 수위를 낮췄고, 대신 삼성이 철저한 반성과 함께 앞으로 더 잘하겠다며 만든 조직이다. 삼성의 준법 경영을 감시해야 하는 준법감시위원장이 당당하게 사면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몇 년 만에 바뀐 재계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재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취임 전후로 이전 정부보다 친기업 정서를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말한 기대의 범위는 앞으로 새 정부가 대기업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 물가라는 숙제를 떠안은 추 부총리는 이날 재계를 향해 물건값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대기업들은 일단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지 않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분간일 가능성이 높다. 국제 유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대기업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정부가 대기업에 바라는 게 많아질수록 그만큼 해줘야 할 것도 늘어나고, '계산서'는 복잡해질 것이다.

박상준 산업1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