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자리 잡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보수단체들의 시위가 20여 일째 계속되고 있다. 이들이 스피커를 통해 온갖 구호와 욕설을 내뱉고 군가나 상여가 등을 틀어대는 통에 마을 주민들도 극심한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이들은 극우 유튜버들이다.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면서 실시간으로 후원금을 받다 보니 시위가 점점 더 자극적이고 배설적인 행태로 변질되는 꼴이다.
□ 문 전 대통령 측은 사저 앞 시위대를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은 앞서 15일 페이스북에 “집으로 돌아오니 확성기 소음과 욕설이 함께하는 반지성이 작은 시골마을 일요일의 평온과 자유를 깨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딸 다혜씨도 최근 “이게 과연 집회인가? 입으로 총질해대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라며 “증오와 쌍욕만을 배설하듯 외친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삭제되긴 했지만, 문 전 대통령 측이 사저 앞 시위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문 전 대통령이 모욕 혐의 등의 고소를 검토하는 것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로는 제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속적인 소음을 내고 있지만 집시법상 소음기준(주간 65㏈ 이하)은 넘지 않아 경찰도 별다른 대처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시끄러운 도심 환경의 소음 기준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도 똑같이 적용되다 보니 시골 마을의 평온이 산통 깨진 꼴이다.
□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이런 행태를 시위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위는 특정한 정치적 지향이나 권익 향상을 위한 의사 표현이지만, 사저 앞 시위에선 어떤 긍정적 요소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실시간 중계를 통한 후원금으로, 상당한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리 보면 시위라기보다 막말·욕설의 상업적 공연에 가까운 것이다. 이들은 시골 마을에까지 증오를 전파하는 저질 유랑단인 셈이다. 결국 보수 진영을 좀먹게 될 악성 종양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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