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으로 4번째 칸 경쟁 부문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다. 기자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행사가 끝난 후엔 몇몇 기자들이 앞다퉈 단상으로 달려갔다. 박찬욱 감독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서였다. 24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칸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을 향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오후 박찬욱 감독을 칸 한 호텔에서 만났다. 박 감독은 “상영 이후 만난 지인들 모두 영화가 좋았다고 말해줬는데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래도 그런 줄 알고 살겠다”며 웃었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 ‘헤어질 결심’은 23일 오후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세계 첫 공식 상영회를 열었다. '헤어질 결심'은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올드 보이', 2009년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쥐', 2016년 '아가씨'에 이어 박 감독의 네 번째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다.
‘헤어질 결심’은 독특한 영화다. 수사극이면서 로맨스 영화다. 예의 바르고 고지식한 형사 해준(박해일)이 남편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용의선상에 오른 여자 서래(탕웨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해준은 서래에 끌리고, 서래는 해준에게 매력을 느낀다. 해준은 결혼을 했고, 서래는 과거가 수상쩍다. 둘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위태로운데, 살인사건까지 끼어들어 위험천만이다. 박 감독은 “해준이 서래를 수사하기 위해 접근하고 잠복근무하는 모습이 연애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에는 침실 장면이 없다. 폭력이 등장하나 피가 흥건하게 스크린에 스미진 않는다. 박 감독 전작들과는 다른 면모다. 박 감독은 “어른을 위한 어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이런 말을 했더니 주변에서 엄청난 섹스 장면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그런 기대가 나온다면 그 반대로 영화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다르다고 들이대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나 그러면 관객은 달아나기 마련”이라며 “너무 들이대지 않고도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헤어질 결심’에는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 김신영, 배우 박정민이 짧게 출연한다. 방송에만 전념해온 김신영은 의외다. 박 감독은 “튄다고 겁을 내기에는 너무 캐스팅하고 싶었다”며 “예전 예능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 코너 ‘행님아’를 할 때부터 불세출의 천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시동’(2019) 때부터 눈여겨본” 박정민은 “이번 기회에 알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작용했다”고 밝혔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산과 바다, 안개가 주요 키워드다. 영화 전반부는 산이, 후반부는 바다가 주요 배경이다. 안개는 영화 전반에 흩어져 있다. 영화의 시작은 가수 정훈희가 1967년 노래한 ‘안개’가 알린다. 후반부 공간배경인 해변 소도시 이포는 안개가 잔뜩 끼는 곳이다. 영화의 끝에 노래 ‘안개’가 흐른다. 55년 전 음악만으로도 고전의 느낌이 강하다. 박 감독은 “(영국에서)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을 찍을 때쯤 고전적인 풍미를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래 ‘안개’가 영감을 줬고, 어른스러운 사랑의 원형 같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 ‘밀회’(1945)가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헤어질 결심’에 대한 외국 언론 반응은 호평이 대부분이다. 24일 미국 연예전문매체 버라이어티는 ‘짓궂은 살인 미스터리에 휩싸인, 능수능란하고 현란한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높게 평가했다. 영화제 일일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 24일호에 따르면 ‘헤어질 결심’은 평론가 및 언론인 11명이 준 평점 평균점수가 3.2점으로 지금까지 상영된 경쟁 부문 영화 12편 중 가장 높다. 두 번째로 평균점수가 높은 ‘아마겟돈 타임’(감독 제임스 그레이)은 2.8이었다. 올해 경쟁 부문 초청작은 22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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