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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세습주의와 민족주의

입력
2022.05.2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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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퀘벡주 '애국자의 날'

불어 'Oui(Yes)'를 새긴 옷을 입고 퀘벡주기를 흔들며 시위에 나선 퀘벡주 분리 지지자들. 1995년 10월 로이터 연합뉴스

불어 'Oui(Yes)'를 새긴 옷을 입고 퀘벡주기를 흔들며 시위에 나선 퀘벡주 분리 지지자들. 1995년 10월 로이터 연합뉴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근대 합리주의 자유주의의 산물이다. 개념적으로 능력주의는 횡적으로 엽관·연고주의에 맞서고, 종적으로 세습주의와 등진다. 그래서 공정, 정의의 이데올로기와도 공조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능력주의와 엽관·세습주의의 경계는 모호하다. 아니 극단이 이어진 원형 구조라 할 수도 있다. 인맥도 능력이라는 말이 상식처럼 통용되고, 예일대 교수 대니얼 마코비츠가 책 '엘리트 세습'에 썼듯이 개인의 능력과 성취가 부모의 능력에 크게 좌우되는 시대가 됐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목적 옹호는 저 한계와 모순을 호도하기 위한 수사이고, 냉소하든 순응하든 운명인 양 내면화하게 하는 선전이 된다. 마이클 샌델은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심화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그러니 능력주의와 엽관·세습주의의 근본적 차이는 차별과 불평등을 어떤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하느냐로 갈라선다.

정치적 민족주의도 근본적으로는 연고·세습주의 이념에 뿌리를 둔 이데올로기다.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는 정체성, 언어, 문화 등은 연고, 세습의 결과일 뿐이다. 제국·식민주의 시대의 민족주의는 정치적 자유, 해방의 이념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미심쩍은 정치 선동가들은 지금도 툭하면 그 불씨를 지피고 불화와 갈등, 전쟁, 내전의 폭력과 희생을 야기하고 정당화한다. 그 바탕에도 사실 가해자, 피해자로 나뉘는 차별과 불평등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1967년 몬트리올 국제박람회 참석차 캐나다를 방문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퀘벡시청 광장군중을 향해 '2차대전 나치 치하에서 해방된 파리에 재입성했을 때가 떠오른다'고 연설한 게 그 예다. 그의 연설은 절대다수 프랑스계 주민이 불어를 단일 공용어로 쓰는 퀘벡주의 분리독립 정서에 불을 지폈다. 오늘은 퀘벡 주정부가 제정한 '애국자의 날'(5월 25일 전 마지막 월요일)로, 1837년 이날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영국 통치에 저항해 봉기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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