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로 죽어가도 모른 체... 수십 명 행인들은 왜 지나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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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로 죽어가도 모른 체... 수십 명 행인들은 왜 지나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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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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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수십명 지나친 '구로구 묻지마 살인'
①주민들 "폭행 빈번... 만성적 치안 불안"
②방관자 효과 "사람 많을수록 되레 안 도와"
③신고하면 시간·비용 소요 "합리적 무시"
④'착한 사마리아인법' 없어 외면해도 처벌 불가

서울 구로구 구로동 한 아파트 입구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무차별 폭행 사건 현장. 가해자인 40대 남성(오른쪽)이 피해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씁쓸해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 11일 오전 6시쯤 서울 구로구 아파트 앞 길가에서 6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게 시작이었죠. 범인은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 B씨. 그는 아무 이유 없이 A씨 얼굴을 수차례 폭행한 뒤 주변에 있던 깨진 도로 경계석(연석)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안면부를 내리쳐 숨지게 한 혐의(살인 및 폭행)로 구속됐죠.

사건의 잔혹함에 더해 당시 쓰러진 피해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행인이 꽤 많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비정함과 씁쓸함도 느꼈습니다. 사건 현장을 비췄던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경찰과 소방이 오전 6시 17분쯤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A씨 곁을 지나친 사람만 54명이었죠. CCTV 화면에 신고 장면이 잡히진 않았지만, 소방은 오전 6시 9분쯤 119에 '사람이 다쳤다'는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습니다.

사건이 이른 아침에 벌어져 인적이 드물기는 했지만, 행인들은 왜 쓰러진 피해자를 그냥 지나쳤을까요? 주민들은 언론에 "폭행 사건이 빈번해 폭행 사건을 보더라도 신고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경찰에 여러 차례 치안 불안을 호소했지만 순찰도 잘 나오지 않는다"며 '만성적 치안 불안'을 꼽았다는데요. 그게 전부일까요?



"사람 많을수록 오히려 돕지 않아"

새벽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해 1명을 숨지게 한 피의자가 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로 설명합니다.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쓰러진 피해자를 본 사람이 많을수록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에 굳이 내가 나서지 않거나(책임감 분산), 다른 사람이 돕지 않는 것을 보고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겠거니 판단하는 오류(다수의 무지)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방관자 효과는 이번 사건과 유사한 '제노비스 사건'을 계기로 생겼다고 해요. 1964년 미국 뉴욕에서 여성 캐서린 키티 제노비스가 새벽에 귀가하던 중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는 30분가량 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이후 '목격자 38명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로 미국인들이 큰 충격을 받습니다. (훗날 목격자 숫자 등 사건이 부풀려졌다고 밝혀집니다.)

이 사건을 분석하기 위해 1968년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탄이 흥미로운 실험을 합니다. 일반 참가자를 대기실에 두고, 벽에 뚫린 통풍구를 통해 연기를 들여보내 얼마나 빨리 신고하는지 알아본 건데요. 대기실에 혼자 있었던 사람은 2분 안에 신고했지만, 참가자가 여러 명일 경우 신고 비율도 낮고 신고할 때까지 시간도 보다 길었다고 합니다.

괜히 나섰다가 불필요한 비용만 지불하거나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심리도 작용합니다. 사건을 신고하면 경찰서에 가서 증인으로 진술하거나 추후 추가 조사도 받을 수 있어 시간과 비용(교통비 등)을 치릅니다. 만일 신고한 행인을 범인이 목격했는데 그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면, 추후에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죠.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도와줬을 때와 안 도와줬을 때 감수해야 할 유무형의 손해와 이득을 감안하면, 피해자를 회피하는 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신고하면 시간·비용 소요, 자칫 피해 주면... '합리적 무시'"

심장마비로 사고를 낸 택시기사를 그냥 놔둔 채 떠난 승객으로 논란이 됐던 사건 기사. 한국일보 2016년 8월 26일자


경제학에서는 이런 선택을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합리적 무시'는 개인이 얻는 이득과 혜택에 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비용이 너무 많을 때는 무시해 버린다는 건데요.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행인들이 피해자를 안 도와줬을 때 느낄 양심의 가책, 사회적 비난 등은 논외로 하고, 순전히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지극히 합리적 의사 결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딱 알맞은 사례가 실제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2016년 8월 대전에서 승객 2명을 태우고 운행 중이던 택시기사가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로 의식을 잃고 앞 차와 추돌하는 사고를 냈지만, 승객들은 119에 구조 신고도 하지 않고 짐을 챙겨 그냥 가 버린 사건입니다. 승객 2명은 당시 트렁크에서 골프 가방 등 짐을 꺼낸 뒤 곧바로 다른 택시를 잡아 타고 현장을 떠났다고 해요. 택시기사는 다른 시민의 신고로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안타깝게도 사망했습니다.

사고 발생 4시간여 뒤에 경찰과 연락이 된 해당 승객들은 "일본으로 골프 여행을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공항버스 시간이 10여 분밖에 남지 않아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웅혁 교수는 "승객은 만약 신고할 경우 병원이나 경찰에 동행해 조사받아야지, 골프여행 취소하고, 예약해 놓은 비행기도 놓치지 여러가지로 훨씬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방관자로 남으려 한다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 위기에 처한 사람을 선의로 도왔다가 의도치 않게 피해를 줘 일이 꼬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응급의료에관한법률에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이 있긴 합니다만, 괜히 휘말리면 골치 아파진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착한 사마리아인법 도입?"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외면해도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없어서죠.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없는 건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판사 출신인 도진기 변호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형법이 적용돼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있었다가, 해방되고 1953년 우리 고유의 형법이 만들어질 때 착한 사마리아인법 조항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인데요. 1953년은 3년 동안 계속된 한국전쟁 직후라서 사회적 혼란이 존재했고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상황이었죠. 먹을 게 없어 굶어죽거나 길거리에 병든 사람들이 속출하던 때였습니다. 나조차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시절에 '남을 도와라, 돕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라고 하기에는 매우 곤란했다는 겁니다.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없어진 가장 중요한 근거가 경제적 이유였다면, 선진국 반열에 오를 만큼 충분히 먹고살만해진 지금 다시 도입할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도 변호사는 한국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인들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의식이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높아졌다"며 "경제적으로 윤택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처벌 법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법리적, 논리적으로 처벌하는 게 맞다 틀리다는 논쟁을 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사회의 도덕, 법 의식, 문화 등을 반영해 해당 공동체가 어느 쪽으로든 결단할 문제"라며 "일본이 당대부터 지금까지 처벌 법규(형법 제217조에서 유기죄로 처벌)를 둔 것도 일본 사회 구성원의 의식 문화를 반영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선진국이라도 착한 사마리아인법 도입 여부는 국가마다 다릅니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시행해 위험에 처한 자를 도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외면했을 때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부과합니다. 반면 영국 등은 도입하지 않았고, 미국도 50여 개 주 중 도입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특정인 지목해 도움 요청해야... 경찰·시민 치안 협력도"

서울시 '안심귀가 스카우트'. 뉴스1


그렇다면 위기에 빠진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일단 도움을 받으려면 행인이나 주변 사람에게 구조할 책임이나 부담을 느끼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그냥 "도와주세요"라고 불특정 다수에게 크게 외치는 것보다 "거기 모자 쓴 아저씨, 119에 신고해주세요"라고 특정인을 지목해서 무엇을 해주길 바라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라는 거죠. 그래야 '내가 도와줘야 하는구나'라고 책임을 느껴, 보다 빨리 행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죠. 이는 심리학자나 전문가들이 실험을 통해 검증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의 순찰 방식 변화를 주문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웅혁 교수는 "과거에는 경찰이 걸어서 골목골목 돌아다니는 순찰(도보 순찰)로 취약 지역도 관여할 확률이 높았는데, 20년 전쯤부터 자동차 순찰로 바뀌었다"며 "순찰 빈도를 확대하고, 차량뿐만 아니라 골목골목 점검할 수 있는 다른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차량을 활용하면 기동성과 신속 대응이 보다 강화되지만, 차량 진입이 어려운 곳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는 겁니다.

그는 또 "치안은 경찰 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시민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최근 시민의 안전한 귀가를 돕는 서울시 '안심 귀가 스카우트' 대원의 신고로 성범죄자가 현장에서 체포된 사례가 좋은 예입니다. 지난달 20일 밤 10시 14분쯤 서울 금천구 시흥5동 골목길에서 10대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려던 60대 남성을, 순찰하던 스카우트 대원 2명이 목격했죠. 이들은 피해자의 겉옷이 반쯤 벗겨진 것을 수상히 여겨 뒤따라가다가 근처 벤치에서 남성이 여성을 안으려 하자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지 물었습니다. 여성은 자신의 나이를 6세라고 말하는 등 공포에 질려 제대로 설명을 못 했고,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해 대화를 이어가면서 112에 신고한 겁니다.

이 교수는 "시민의 협조를 얻으려면 경찰이 평상시 치안서비스를 잘해 경찰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지,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이 협조하려 하겠냐"며 "경찰이 새로운 합동 치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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