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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20년 시간이 들려준다, 도시 정치가 나아갈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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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20년 시간이 들려준다, 도시 정치가 나아갈 길을…

입력
2022.05.19 18:00
수정
2022.05.19 18: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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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

지난 2월 광주 남구 진월동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복합쇼핑몰 공약이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월 광주 남구 진월동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복합쇼핑몰 공약이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민 통합 차원이든 지지 기반 확장을 위한 서진(西進)정책 때문이든, 광주는 또다시 5월 뉴스의 중심에 섰다. 보수 정권 역사상 처음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인사가 총출동했다. 정치 소용돌이 속에 경제 성장에서 소외됐던 '5·18 도시' 광주는 '기억의 도시'라는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경제의 도시'로 부화할 수 있을까. 국가 정부의 경제 발전 약속이 곧장 경제적 성취로 이어질 수 있을까.

신혜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의 신간 ‘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에 따르면 광주의 변화는 '도시 정치'를 이해해야 분석·전망할 수 있다. 책은 도시의 발전 방향을 정할 때 벌어지는 협의와 갈등, 협상의 역동성을 뜻하는 도시 정치를 키워드로 광주를 들여다본다. 소수의 엘리트와 여러 이해관계자, 시민단체, 주민 등이 모두 도시 정치의 주역이다.

인류의 55%가 살고, 한국인의 80% 이상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도시는 수많은 욕망이 부딪치며 충돌하고 결합하는 현장이다. 저자는 다양한 욕망이 교차하는 도시 광주에 20년 넘게 천착해 왔다. 광주는 '기억 공간'에 머물다 광주비엔날레·아시아문화중심도시 등 문화 예술로 도시를 바꾸려는 성장 정책을 거쳐 기업 투자에 기반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까지 큰 진폭의 변화를 겪어 왔다. 책은 1997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온 광주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도시 정치의 길을 탐색한다. 기억과 개발의 갈등, 즉 5·18을 기념하려는 노력과 5·18에서 벗어나려는 경제 성장 욕구 간의 충돌, 중앙과 지방 사이의 위계, 시민사회의 분화 등 광주를 둘러싼 권력관계와 변화의 역동성을 살펴보는 과정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등 광주의 도시 경제를 위한 문화 전략은 새로운 기회가 됐지만 '5·18 도시'라는 과거의 정체성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등 광주의 도시 경제를 위한 문화 전략은 새로운 기회가 됐지만 '5·18 도시'라는 과거의 정체성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광주의 도시 쇠퇴를 극복할 방법으로는 위락 시설을 갖춘 복합쇼핑몰 유치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광주가 일찌감치 '문화 도시'를 표방하며 문화 예술을 통한 도시 발전을 추구해 온 만큼 책은 문화 경제 전략과 이에 따른 '기억'과 '경제 성장' 간 충돌을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도시 개발 주도권이 아직 국가에 있던 시절 광주는 국가 지원으로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 출범시켰다. 지역 엘리트들은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5·18 민주화운동의 왜곡된 이미지를 이유로 5·18을 지우길 원했지만 광주의 민주주의 역사를 지키려는 시민사회 성원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2004년 정부가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선정하고 문화 중심 도시 재생을 본격화하던 시기에도 논란은 거셌다. 아시아문화전당을 옛 전남도청 자리에 조성하면서 부정적 여론이 터져 나왔고, 그 결과 전남도청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광주 출신 '늘공(직업 공무원)' 사이의 권력 투쟁, 시민사회 내부의 분열 등도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뉴시스

저자가 이 같은 도시 정치의 시행착오를 상세히 기록한 이유는 도시 정치 주체 간 갈등 봉합을 통한 결합과 공존이 도시 정체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광주는 국가 지배력과 도시 발전의 관계, 문화 전략과 도시 정치 주체들의 역할, 기억과 도시의 발전 관계 등 대다수의 도시가 겪거나 겪게 될 실험과 운명을 비교적 앞서 경험한 도시다. 국가 정치와 비교해 정치에 관여하는 지역사회 행위자들의 인맥과 관계, 명성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점도 광주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더욱이 기업과 자본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면서 도시는 국가 수준의 정책뿐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른 운명을 맞게 됐다. 책에 따르면 광주는 문화와 경제, 기억과 개발의 정의와 범위를 점차 유연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역 균형 벌전론의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시기여서 광주를 다룬 이 책은 다른 지방도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 "이 책은 광주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광주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깝다". 현대 도시가 겪는 문화 정치적 진통에 대한 확실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해도 도시 발전을 경제 성장과 물리적 경관 개선 정도로 여겼던 과거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각심만큼은 확실히 불러일으킨다.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조차 지난 대선 출마자들의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며 '지역'이 실종된 지금, '도시 정치'라는 중요한 성찰 과제를 제시하는 책이다.

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신혜란 지음·이매진 발행·327쪽·1만8,500원

누가 도시를 통치하는가·신혜란 지음·이매진 발행·327쪽·1만8,5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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