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미국과 보폭 맞추기 해석
박진 외교부 장관 취임 뒤 이뤄진 첫 한중 외교장관 원격회담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한 양국 간 온도 차가 드러났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한국의 지지'를 강조한 데 반해, 한국 정부는 이런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첫 정상외교인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미국에 보폭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16일 박 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첫 화상 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현안을 논의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박 장관은 이날 통화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 발전을 중시하며, 상호 존중과 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를 구축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 장관은 “한국은 언제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해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중국 외교부는 설명했다.
하나의 중국은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한 부분"이며 "중국을 대표하는 합법 정부는 하나"라는 중국의 외교 원칙이다. 미국은 1979년 대만과 단교한 이후 40여년 간 이 원칙을 형식적으로나마 존중해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듯한 행보로 미중 갈등의 주요 뇌관이 되고 있다. 실제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을 승인하는 한편, 최근에는 국무부의 미국과 대만 간 관계를 서술한 개황 보고서에서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인정했다"는 문장을 삭제하기도 했다.
대만을 둘러싼 문제는 이미 한미 간에도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두 정상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했다”며 정상 간 공동성명에서 처음으로 대만 문제를 명시했다.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만 문제와 관련, 한미가 사실상 대중(對中) 공동 압박 전선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되며 "대만 문제를 가지고 불장난 하지 말라"는 중국의 반발이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남중국해 문제와 더불어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미 간 협력 필요성을 짚을 개연성이 있다. 대만 문제를 놓고 한중, 한미 메시지가 상충될 수 있다는 우려로 우리 외교부가 박 장관의 대만 관련 언급은 공식 보도자료에서 뺀 것으로 분석된다.
왕 부장은 이날 회담에서 "중국의 거대한 시장은 한국의 장기적인 발전에 끊임 없는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 미국이 이끄는 공급망 재편에 동참할 경우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우회적 경고로 풀이된다. 왕 부장은 또한 "신냉전의 위험 방지", "진영 대치 반대", "한중 상호 간 핵심 이익 존중" 필요성 등을 강조하며 한중관계에 대한 미국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시도에 경계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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