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지를 가다> ④경남 양산시
민주 현 시장 vs 국힘 전 시장 '양강 구도'
문재인 전 대통령 귀향으로 전국적 관심
도시 급성장... 신도시 표심 당락 가를 듯
"경남 양산시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과거 타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으면 "통도사가 있는 곳" 또는 "부산 바로 위에 있는 도시"라는 정도의 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문재인 대통령 사저 있는 곳 아닌가요"라는 얘기를 한다.
김해가 노무현의 본진이라면, 양산은 문재인의 고장이 됐다. 그래서인지 보수 후보가 유리한 다른 경남 지역과 달리, 양산시장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치열한 혈투가 예고되어 있다. 현직 시장이 바로 민주당 소속이고, 그를 잡으려 등판한 국민의힘 후보는 바로 전직 시장이다. 이 두 명의 전·현직 시장은 개인적으로는 양산시장 선거에서 네 번째 맞대결을 펼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귀향 …전국적 관심 '집중'
“양산은 선거 얘기보다 문재인 대통령 귀향 얘기가 더 많아요.” 대통령 퇴임을 하루 앞둔 9일 양산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수찬(62)씨가 말했다. 김씨는 “지지 여부를 떠나 전직 대통령이 같은 지역에 살러 온다는데 관심이 없을 수가 있겠냐”며 “대놓고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해도 대체로 귀향에는 긍정적인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 박성태(68)씨도 “평산마을(문 전 대통령 사저)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본인은 조용히 살고 싶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당장 이번 선거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고 말했다. ‘민심의 바로미터’라 불리는 택시기사들의 눈에도 문 전 대통령의 귀향은 양산 선거의 최대 변수다.
전통적으로 경남은 보수 강세 지역. 역대 일곱 번 양산시장 선거에서는 3·5·6회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가 이겼다. 1·2·4회는 무소속이 당선됐지만, 보수 성향이 강했다. 민주당 계열의 승리는 2018년 김일권(71) 현 시장의 당선이 유일했다. 김 시장은 3선을 노리던 자유한국당 소속 나동연(67) 전 시장을 12%포인트가 넘는 큰 격차로 따돌렸다.
민주당 쪽에서는 문 전 대통령의 귀향 분위기를 양산시장 선거 연속 승리로 이어갈 수 있다고 기대한다. 김해시의 경우도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돌아온 이후 치러진 2010년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후 2018년까지 보궐선거를 포함해 4번 연속 민주당이 시장직을 차지하며 김해는 ‘민주당의 영남 성지’로 자리 잡았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기본적 보수 지지세에 윤석열 대통령 취임 효과가 시너지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번 대선에서는 윤 대통령이 양산에서 53.52%의 득표율을 기록해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42.18%)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실리 추구' 신도시 유권자를 잡아라
최근 양산 지역 선거는 신도시 표심에서 결판이 났다. 양산은 신도시 조성으로 최근 급성장한 도시다. 2010년 25만5,000명에 불과하던 인구는 지난달 기준 35만4,000명으로 늘었다. 신도시가 있는 물금읍, 동면, 양주동 3개 지역 유권자는 지난 대선 기준 15만2,114명으로 양산시 13개 읍·면·동 전체 유권자(29만4,057명)의 절반을 넘는다.
보통 젊은층이 많은 신도시는 진보정당에 유리하다는 게 통설이지만, 양산은 갑·을로 나뉜 2016년 총선 이후 물금신도시가 속한 양산갑 선거구를 줄곧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이 지키고 있다. 21대 총선에서도 갑·을 모두 신도시 쪽은 오히려 보수 후보의 득표율이 높았다.
사무실이 밀집한 양주동 젊음의거리 일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주연(34)씨는 “커피 한잔을 마실 때도 쿠폰을 적립해 주거나 100원이라도 싼 곳을 찾는 게 이 동네 30, 40대 직장인들의 분위기”라며 “이념이나 정당보다 누가 당선되는 게 본인에게 이득인가가 우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신도시 조성 이후 부산에서 이사왔다는 초밥집 사장 최진석(48)씨도 “이곳은 외지인과 토박이 등이 섞여 뚜렷한 정치적 성향을 보이지는 않는다”며 “특히 생활과 직결되는 지방선거는 내가 사는 곳 주변에 대한 개발 공약이 오히려 표심을 좌우한다”고 덧붙였다.
김일권 vs 나동연 '운명의 4차전'
실리 우선 투표 성향을 감지한 출마자들은 거대담론이나 이념적인 논쟁이 아닌 생활 밀착형 공약을 내고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김일권 시장은 천성산을 사이에 두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원도심에 대규모 주택단지 조성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다. 한창 급물살을 타고 있는 물금역 KTX 정차와 광역철도 웅산선 착공도 조기에 마무리하겠다는 각오다. 김 시장은 “전국 최초로 발달장애인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소통을 통해 새로운 양산을 만들어 왔다”며 “미래 전진을 위해 새로운 양산을 완성할 수 있도록 다시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는 국민의힘 나동연 전 시장은 20여 년간 방치돼 신도시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부산대 유휴부지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황산공원 복합레저 사업인 파크골프장 확장, 캠핑·체육·수상레저 시설 완성, 회야강 친수공간 조성 등 주민 휴식처 확대도 약속했다. 나 전 시장은 “대통령 직속 인수위 국민통합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튼튼한 중앙인맥뿐 아니라 행정, 정치 경험을 두루 갖추고 있다”며 “힘 있는 여당후보에시정을 맡겨 달라”고 강조했다.
양대 정당 공천을 받은 두 사람의 대결은 2010년 이후 이번이 벌써 4번째다. 앞선 세 번의 대결에서 나 전 시장은 2연승을 거두다가 2018년 선거에서 처음으로 김 시장에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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