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러, 5월 중순 DPR·LPR서 주민투표"
투표 조작한 뒤 꼭두각시 앉힐 가능성
남부 헤르손에서는 루블화·러 교육체계 도입
우크라, 도시 탈환·러軍 사살 전세 반전
"전쟁 예측할 수 없고 폭발적 국면으로"
우크라이나 동ㆍ남부 점령지에 ‘괴뢰 정부’를 세우려는 러시아의 야욕이 구체화하고 있다. 문화 유산 파괴와 러시아식 교육 도입으로 ‘우크라이나 정체성 지우기’에 나선 데 이어, 점령지 강제 병합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영토를 러시아에 떼어주는 일은 없다”고 선언한 우크라이나는 거센 반격에 나서며 전세 역전을 노리고 있다.
2일(현지시간) 마이클 카펜터 유럽안보협력기구(OSEC) 주재 미국 대사는 워싱턴에서 취재진에 “러시아가 5월 중순 우크라이나 동부 일명 돈바스 지역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공식 장악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영토 합병 정당성을 얻으려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러시아가 이 지역을 병합하려 한다는 관측은 전쟁 전부터 꾸준히 나왔지만, 미 당국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 친러시아계 주민 거주 비율이 높은 DPR와 LPR를 ‘해방’하고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미국은 속국화 과정에서 각종 사기와 부정 행위가 횡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카펜터 대사는 “러시아는 투표를 조작할 것”이라며 모든 계획은 ‘크렘린궁이 짠 각본’이라고 꼬집었다. 또 러시아가 투표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가 임명한 단체장을 쫓아내고 러시아에 충성하는 ‘꼭두각시’를 앉힐 것으로 내다봤다. 남부 헤르손주(州)에서도 비슷한 투표가 진행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주민투표→영토 편입’ 수순은 크림반도 병합 때의 데자뷔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에서 러시아 귀속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96.7% 찬성 결과를 근거로 우크라이나 땅이던 이곳을 자국 영토로 만들었다. ‘투표’라는 민주적 행위를 빌려 강제 영토 편입 명분을 만든 셈인데, 돈바스 지역과 헤르손 역시 ‘제2의 크림반도’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미 헤르손에서는 러시아화(化) 작업이 일사불란하게 진행 중이다. 러시아는 1일부터 루블화 사용을 강제한 데 이어 고대 문화 유적인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스키타이 무덤까지 파괴하고 있다. 역사를 짓밟아 정체성을 지우기 위한 행보다. 교육과정 역시 러시아식으로 바꾼다. 우크라이나 통신망을 끊고 러시아망을 새로 연결했다. 사실상 러시아 영토로 보고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른 도시엔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날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엔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건물 수십 채가 무너지고 14세 소년이 숨졌다. ‘최후의 항전’이 이어지는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는 민간인 대피를 위한 휴전 직후 러시아군이 하루 종일 전투기를 동원, 폭탄을 퍼부었다. 이들 지역 역시 점령할 경우 속국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크라이나의 반격도 거세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하르키우 인근 도시 루스카 로조바와 동부 베르흐냐 로한카를 탈환하며 전세 뒤집기에 나섰다. 전날에는 동부 군사 요충지인 이지움에서 러시아군 기지를 공격, 장성급 한 명을 포함해 200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부 지역에서 눈에 띄는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일인 9일 ‘전면전’을 선언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경우 러시아가 국가총동원령과 계엄령을 내리는 등 전시체제로 전환하게 되는데, 미 워싱턴포스트는 “전쟁은 더욱 예측할 수 없고 폭발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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