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인조가죽'이 한국선 '에코가죽' 된다...패션업계 만연한 그린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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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인조가죽'이 한국선 '에코가죽' 된다...패션업계 만연한 그린워싱

입력
2022.05.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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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에코의류' 표방 제품 분석했더니
석유계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 기본
'모조·인조' 표현이 맞는데, 한국선 '에코'

[그린워싱 탐정]<5>에코 의류

그래픽= 박길우

검은색 재킷을 입은 모델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흔한 가죽 재킷처럼 보이는 이 재킷의 이름은 '에코 레더 점퍼'. 가죽을 뜻하는 '레더(leather)'라는 단어에 생태·환경·자연 등을 뜻하는 접두사 '에코(Eco)'를 붙였다. 상품 설명에 있는 '그린투웨어(Green to Wear)2.0'이라는 문구까지 보고 나면, 무언가 환경에 악영향을 덜 끼치는 상품일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그런데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자라(ZARA)가 판매하는 이 상품은 미국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팔린다. '포 레더 재킷(Faux Leather Jacket)'. '인조(faux)' 가죽 재킷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제품의 소재를 따지면 미국 사이트의 이름이 더 정확하다. 이 재킷은 겉감과 안감이 모두 100% 폴리에스테르인 모조 가죽이기 때문이다. 폴리에스테르는 석유를 가공해 만든 합성섬유로 일종의 플라스틱이다. 적어도 생태, 자연 유래 소재는 아닌 것이다.

자라 측은 이에 대해 '시스템상의 오류'라고 설명한다. 자라 관계자는 "본사에서 상품을 게시하면 내부 시스템에 따라 각국 쇼핑몰 언어에 자동 번역되는데 그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며 "국내에서 따로 현지화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라는 현재 상품명을 수정했다.

이 해명에는 의문이 남는다. 일반적으로 보급된 자동 번역 프로그램이나 사전을 사용하더라도 'faux'라는 단어는 '모조의, 가짜의'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판매되는 여러 'faux' 제품이 국내 자라 쇼핑몰에서는 '에코 레더' '에코 퍼(모피)'로 판매되고 있다.

국내 의류쇼핑몰에서 유독 이 같은 에코 레더, 에코 퍼라는 이름의 상품이 자주 보이는 건 자라의 설명대로 오류 내지 실수, 혹은 우연일까.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에코 의류'를 표방한 10개 제품을 골라 분석했는데, 전 제품이 합성섬유를 사용한 인조가죽 제품이었다. '플라스틱 가죽'이 '에코 가죽'으로 둔갑해 팔리는 일이 만연한 것이다.

그래픽= 박길우


10개 '에코의류' 조사했더니

현재 판매 중이거나 최근까지 판매됐던 의류 중 제품명에 에코 레더, 에코 퍼가 들어간 상품 10가지의 소재와 홍보문구를 조사했다.

10개 제품 모두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테르가 기본 소재였다. 르꼬끄에서 판매한 '우먼스 에슬레져 에코퍼 하이넥 자켓'과 마리끌레르의 '후드 에코퍼 자켓'은 겉감과 안감, 충전재 등이 100% 폴리에스테르다.

그래픽= 김문중 기자

폴리우레탄을 사용한 제품들도 많았다. 폴리우레탄 역시 일종의 플라스틱으로 신축성이 좋고 튼튼해 건축용 단열재나 신발 밑창 등 고무의 대체재로도 쓰인다. 앳코너의 '에코 레더 크롭 포켓 자켓'과 아위의 '에코 레더 블루종'은 겉감을 100%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었다. 가죽의 팽팽한 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단 세 가지 제품만 플라스틱에서 유래하지 않은 소재를 혼방했다. 지오다노의 '에코 레더 자켓'은 겉감의 72%가 레이온이다. 스파오의 '에코 레더 점퍼'도 이면(양면사용 옷에서 겉감의 또 다른 면) 소재에 레이온 50%를 섞었다.

지오다노의 인조 가죽 재킷 상품 페이지에 '지속가능한 친환경'이라는 소개가 있다. 홈페이지 캡처

레이온은 석유계 섬유는 아니지만 친환경이라고 보긴 어렵다. 레이온은 목재 펄프 등을 화학적으로 가공해 만드는데 제조 공정에서 이황화탄소, 황화수소 등 유해물질을 사용한다. 1980년대 '원진레이온 사건'은 레이온 제조과정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뇌경색, 다발성신경염 등을 겪은 예다.

휠라키즈의 '키즈 에코퍼 구스다운자켓'은 상품 소개문구에 '친환경 에코퍼 사용'이라고 소개됐다. 휠라 키즈 측은 "최근 동물보호가 사회적 이슈가 되다보니 아동 의류업계에서도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단지 모자에 달린 털을 화학섬유로 대체한 것일 뿐이다. 충전재는 거위솜털과 깃털을 채워넣었다.


휠라키즈의 '키즈 에코퍼 구스다운자켓'은 모자에 달린 털을 인조 퍼로 대체했다. '동물보호를 위해 (동물소재)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충전재는 여전히 거위털이다. 홈페이지 캡처


플라스틱 섬유에 붙인 '친환경' 홍보

에코 레더·퍼 제품을 판매하는 대부분의 브랜드가 상품에 '친환경'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스파오 블로그의 '에코 레더 자켓' 소개 문구에는 '친환경과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지오다노의 제품 역시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코 레더 자켓'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르꼬끄의 에코 퍼에도 '가볍고 따뜻한 친환경'이라는 문구가 있다.

기업들이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근거는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르꼬끄 관계자는 에코 퍼 제품에 대해 "진짜 모피를 사용하지 않고 훼이크퍼(인조모피)를 사용함으로써 동물을 보호한다는 윤리적 개념이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MCM의 '에코 퍼 슬라이드' 제품 상세 페이지에는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호화로움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MCM의 '에코 퍼 슬라이드' 상품은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호화로움'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홈페이지 캡처

'인조'라는 말로 충분한 것을, '친환경'까지 탐하는 현상이다. 사실 합성섬유는 미세플라스틱의 온상이다.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 아크릴 등으로 만든 옷은 착용과 세탁 과정에서 섬유가 자연 마모돼 플라스틱 조각이 된다.

2016년 영국 플리머스 대학교 연구진의 실험에 따르면 폴리에스테르 의류 6㎏을 세탁하자 49만6,030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나왔다. 세계자연보전연맹에 따르면 2017년 해양유입 미세플라스틱의 35%가 미세섬유, 즉 옷에서 나온 플라스틱이었다. 위 상품들을 '에코'라 단정짓기 어려운 이유다.

혹시 환경 영향이 적은 특별한 합성섬유를 사용한 걸까. 기업에 되물었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휠라키즈 관계자는 "상품의 에코퍼는 폴리에스테르 성분으로 원사의 꼬임과 가공을 퍼와 최대한 유사하게 개발한 훼이크퍼(인조모피)"라며 "단 상품명에서 훼이크(가짜) 대신 에코로 대체하여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설명에 '친환경적인 가공처리를 거쳤다'고 쓴 앳코너의 경우 "알레르기 반응이 없는 무독성 염료를 사용했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LF의 의류브랜드 앳코너의 인조 가죽 소재 상세설명. 홈페이지 캡처


"에코레더는 그린워싱" 지적, 그러나...

전문가들은 패션브랜드의 이름붙이기가 '그린워싱'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환경의식이 높은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마케팅 용어라는 것이다.

정주연 다시입다연구소 대표는 "에코레더는 기존에 인조가죽 또는 레자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던 제품의 용어만 변경한 것으로 결국 미세플라스틱이 나오는 건 마찬가지"라며 "최근 등장한 비건가죽 제품 역시 플라스틱 합성섬유 소재라 친환경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옥선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 이사는 "소비자들이 페이크, 인조 등의 단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에코·비건 등의 대체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며 "사용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 용어들이 (환경에 대한) 의식적 실천을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브랜드나 제조사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류브랜드 스파오의 블로그에서는 인조 가죽 상품을 '친환경과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블로그 캡처

광고에 친환경·에코 등의 용어가 들어갈 경우 환경기술산업법이나 표시광고법에 따른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만약 친환경이라는 주장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제재도 가능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에코 퍼를 탄소를 감축했거나 자원순환을 하는 등 친환경적인 제품으로 소비자가 인지하도록 광고를 한 경우 실증 자료를 요청해서 위반 사항이 있는지 검토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계부처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에코 퍼라는 그 단어 자체만을 봤을 때는 보통 인조 섬유라는 의미로 통용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 기만으로 연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환경적 속성은 단순히 분해과정뿐 아니라 제품 생애주기 전체에서 오염물질 감소 등을 전체적으로 따져야 한다"라며 "플라스틱 합성섬유라는 사실만으로 '친환경이 아니다'라고 단순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일반제품과 '에코' 제품이 차이가 없다

패션브랜드의 과장된 친환경 마케팅 속에서 소비자들은 그린워싱 광고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영국의 비영리단체 체인징마켓파운데이션은 자라, H&M, 루이비통 등 12개 글로벌 의류브랜드의 제품 4,000여 개를 평가한 결과 친환경을 주장하는 의류 제품의 59%는 잘못된 정보에 기반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환경영향을 줄이겠다고 하면서도 합성섬유를 쓰는 경우가 만연했다. 각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친환경' 라인 제품에 합성섬유 혼용률이 52%에 달했다. 일반 제품의 합성섬유 사용이 59%인 것과 큰 차이가 없다. H&M의 경우 친환경 라인인 '컨셔스 컬렉션' 제품의 합성섬유 혼용률은 72%로 일반 제품 혼용률(61%)보다 오히려 높았다.

신혜정 기자
황은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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