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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관 잠근 러시아 vs 석유 안 사는 서방… 전쟁 2막 신무기는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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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관 잠근 러시아 vs 석유 안 사는 서방… 전쟁 2막 신무기는 ‘에너지’

입력
2022.04.27 19:4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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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폴란드·불가리아에 가스 공급 중단
유로화 가치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
러 제재 적극 동조한 두 나라에 보복·경고
유럽, 대체 공급처 마련·비축량 확보 '대응'
석유회사도 러와 손절… "러 경제에 치명타"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은 27일부터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나했다. 사진은 2006년 12월 29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남서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냐스비주 인근 야말-유럽 가스관의 압축소에서 한 직원이 점검 작업을 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은 27일부터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나했다. 사진은 2006년 12월 29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남서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냐스비주 인근 야말-유럽 가스관의 압축소에서 한 직원이 점검 작업을 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러시아가 결국 ‘에너지’라는 무기를 꺼내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간 눈엣가시였던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천연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했다. 두 나라를 본보기로 향후 다른 나라로 확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똘똘 뭉친 서방 연대에 에너지를 무기 삼아 균열을 내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셈인데,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2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예고했던 대로 이날 오전부터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가스 공급을 완전히 끊었다. 전쟁이 터진 이후 러시아가 유럽 국가를 상대로 가스 공급을 차단한 것은 처음이다. 그 영향으로 이날 달러화 대비 유로화 환율은 1.0588달러를 기록, 2017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즈프롬은 두 나라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았다는 구실을 들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의 경제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자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이른바 ‘비우호국’에 가스 대금 루블화 결제를 강제하는 대통령령을 내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가 가스로 유럽을 협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한 보복이자 경고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폴란드는 서방 무기가 우크라이나로 넘어가는 주요 통로이고, 대(對)러시아 제재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다. 전날에는 가즈프롬을 포함해 러시아 기관과 개인 등 50곳을 제재 목록에 올렸다. 한때 러시아와 가까웠던 불가리아도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와 관계를 끊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키릴 페트코프 불가리아 총리는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했다.

폴란드와 불가리아는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각각 55%, 90%로 매우 높지만, 에너지 대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자국민을 안심시켰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폴란드 가스 저장고는 76% 채워진 상태이고, 가스 공급처를 다양화했기 때문에 가스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니콜로프 불가리아 에너지장관도 “전쟁에서 가스가 정치ㆍ경제적 무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불가리아는 러시아에 굴복하거나 고개를 숙인 채 협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26일 구소련 시절 세워졌던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친선우호 상징 조형물이 철거되고 있다. 키이우=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26일 구소련 시절 세워졌던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친선우호 상징 조형물이 철거되고 있다. 키이우=AFP 연합뉴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이 되레 러시아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유럽이 대체 공급처 발굴과 비축량 확보 등 에너지 비상 대책을 준비해 뒀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독일은 유럽 각지로 뻗은 가스관을 통해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에서 가스를 들여올 수 있다. 남유럽 국가들도 터키를 거쳐 아제르바이잔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다. 북유럽 최대 석유ㆍ가스 기업인 노르웨이 에퀴노르는 가스 증산을 검토 중이다. 유럽행 가스관을 먼저 잠근 건 러시아지만, 나중에는 러시아가 가스를 수출할 길이 아예 막혀 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EU는 러시아산 석유까지 제재할 방침이다. 현재 논의 중인 6차 대러 제재에 러시아산 석유 수입 제한 조치를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번 달 러시아산 경유 수입량은 하루 77만 배럴로 지난해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석유 금수 조치를 염두에 두고 원자재 중개기업과 정유회사들도 자발적으로 러시아산 물량 구매를 줄여나가고 있다.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로즈네프트는 지난주 원유 판매를 위해 국제 입찰을 시행했으나 참여한 회사가 없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전날 보도했다. 결국 대형 유조선 19척을 꽉 채울 수 있는 분량인 3,800만 배럴이 고스란히 재고로 남았다. 세계 최대 원유 중개업체 비톨과 다국적 원자재 중개업체인 스위스 트라피구라도 러시아와 원유 거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로즈네프트가 원유 판매에 계속 어려움을 겪으면 가뜩이나 서방 제재로 위기에 처한 러시아 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로즈네프트는 2020년 러시아 정부 1년 예산의 20%가량인 320억 달러(약 40조5,000억 원)를 세금으로 납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심 ‘자금줄’ 중 하나다. 가스ㆍ석유 판매 대금은 지난해 러시아 국가 예산 45%를 차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를 뒷받침하는 에너지 산업이 혼란에 빠지면 러시아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표향 기자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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