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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 3초면 친구가 된다

입력
2022.04.21 20:00
수정
2022.04.25 12:3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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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주
오성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편집자주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착시현상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교수가 ‘지각심리학’이란 독특한 앵글로 착시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오성주

ⓒ오성주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아이 보는 일이 잦아졌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서 긴급가정보육을 요구하는 날에는 부모 중 한 명은 꼼짝없이 아이를 봐야만 한다. 어떤 학자들은 세탁기가 여성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하지만, 아이 보는 일이 얼마나 큰 가사 노동인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마도 로봇이 아이를 보는 게 일상이 되는 미래에는, 지금의 여성들을 여전히 원시시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기술하게 될 것이다. '육퇴'라는 말이 유행인데, 이는 '육아 퇴직'의 준말이다. 어른이 하루 종일 아이에게 시달리다 아이를 재운 다음에야 겨우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꼬집는다.

아이들은 모래놀이 같은 단순한 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하지만, 어른이 보기에 아이들의 놀이란 따분하기 짝이 없다. "우리 병아리 키우지 않을래? 병아리가 달걀에서 나오는 거 알아?" 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 이것은 내가 노랗게 핀 개나리를 보고 병아리가 떠올라서이기도 했지만, 너무 지루해서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 제안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대찬성을 했다. 나는 그 길로 인터넷을 검색해 가정용 부화기를 주문했다. 며칠 후 부화기가 도착했고 아이들과 슈퍼에서 유정란을 사 부화기에 넣었다. 이 국산 부화기는 신기하게도 버튼만 누르면 부화기 실내의 습도와 온도를 최적으로 유지해 주었다.

21일 후 정말로 병아리가 태어났다! 아이들은 경외감으로 가득찼다. 태어난 지 1주일이 지나 햇볕이 따뜻한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 모래밭에서 병아리를 놓아 주었다. 병아리는 삐약삐약 소리를 내면서 여기저기 땅을 쪼아대며 봄을 온몸으로 즐겼다. 사진은 병아리의 모습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을 마주친 나는 병아리가 내 마음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인간은 상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일은 자동적으로 일어나지만 두 가지 시각 단서를 정교하게 처리해야 가능하다. 눈의 흰자위에서 검은 눈동자의 상대적 위치, 그리고 머리의 방향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 동물 가운데 눈에 흰자위가 있는 경우는 인간을 제외하고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생물학자는 인간의 흰자위는 사회성을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머리는 그대로 둔 채 눈알을 돌려 시선을 바꾸는 기술은 뇌에서 복잡한 회로가 필요하다. 닭처럼 많은 동물들은 눈알을 돌리는 회로를 갖지 않기 때문에, 머리를 돌려 시선을 바꾸는 단순성을 추구한다. 병아리는 눈에 흰자위가 없지만 머리의 움직임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갓 태어난 아이도 엄마 아빠와 눈을 마주치려고 애쓰고, 4개월 정도 되면 상당히 정교한 눈 맞춤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 그만큼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 인간에게 중요하다. 눈의 방향을 통해 상대가 어떤 감정 상태인지, 무엇에 주의하고 있는지, 잠시 뒤 어떤 일을 하려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눈 맞춤은 뇌에서 감정을 맡고 있는 영역을 활성화시켜, 감정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쟁관계에 있거나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 맞춤은 혐오를 불러일으키지만, 우호관계에 있으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눈을 3초 정도씩 마주치면서 대화를 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 병아리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나는 병아리의 가여운 눈짓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몸의 형태와 지능의 다름을 초월하여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존재론적 고독을 담고 있다.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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