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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100명 남짓 섬마을...코로나 뚫고 한 해 5만 관광객 몰린 비결은

입력
2022.04.22 04:30
수정
2022.04.22 09:4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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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다] <1>전남 신안 기점·소악도
인구 줄어 무인도 전락할 뻔한 서해의 작은 섬
섬과 섬을 잇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 인기몰이
'12사도 순례길'로 '섬티아고' 로 각광
천혜 자연환경은 덤...청년이 돌아와 고향 지켜
다녀간 관광객 절반이 "다시 찾고 싶다" 손꼽아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7일 전남 신안군 대기점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다.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7일 전남 신안군 대기점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다.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주민 100명 남짓한 전남 신안의 섬마을 기점·소악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해의 다른 작은 섬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였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언제든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될 수도 있는 쓸쓸한 곳이었다.

하지만 놀랄 만한 반전이 일어났다. 섬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다녀간 관광객만 5만3,000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145명꼴이다. 섬에 사는 주민보다 훨씬 많은 외지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점·소악도를 가득 메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8년 2,600명의 관광객이 섬을 찾은 것과 비교해 관광객 수가 3년 만에 무려 20배나 증가했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휘청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과연 서해의 작은 섬에서 어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하루 두 번 즐기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

전남 신안군 기점·소악도 예배당 중 소기점도 호수 위에 설치된 6번 감사의 집.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전남 신안군 기점·소악도 예배당 중 소기점도 호수 위에 설치된 6번 감사의 집.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전남 목포와 신안을 잇는 압해대교를 지나 30분가량 차로 달리면 송공항이 나온다. 이곳 항구에서 오전과 오후 각각 두 번씩 기점·소악도로 향하는 배가 출발한다. 배를 타면 곧장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규모에 감탄할라치면 배는 50분을 달려 어느새 대기점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까지 기점·소악도를 구성하는 섬들은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면 섬과 섬을 잇는 노둣길로 연결된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불릴 만한 경이로운 광경이 매일같이 외지인들을 맞이하는 곳이다. 이웃한 병풍도와 신추도까지 합치면 길이가 족히 2km나 돼 국내에서 가장 긴 노둣길로 불린다. 기점·소악도 주변 갯벌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과 람사르습지,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생태적 보존 가치가 높은 뛰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처럼 기점·소악도는 한반도 주변에 널려 있는 다른 섬에서 보기 힘든 독보적 관광자원을 갖췄다. 하지만 증도와 지도 등 주변 큰 섬들에 가려져 그간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순례길 조성 당시 마을 이장으로 3번 예배당 설치를 위해 땅까지 기증한 대기점민박 주인 김영근(56)씨는 “외지에서 살다가 2011년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당시 하루 관광객은 한두 명에 불과했다”면서 “마을 주민들도 대부분 70대 이상 어르신들뿐이라 섬의 미래를 얘기하기 힘들었다”며 10년 전을 회상했다.

프랑스 작가까지 참여한 12개의 예배당

마을 이장을 지낸 김영근씨가 전남 신안군 기점·소악도 12사도 순례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마을 이장을 지낸 김영근씨가 전남 신안군 기점·소악도 12사도 순례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극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기점·소악도는 2018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에 선정됐다. 그간 섬이 수줍은듯 고이 품었던 잠재력을 마음껏 떨칠 기회를 잡은 셈이다다.

신안군이 신의 한 수를 놓았다. 가고 싶은 섬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경남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조성을 주도한 섬 기획 전문가 윤미숙씨를 영입했다. 노둣길이 모세의 기적에 비유되고, 섬 주민 90%가 대기점도와 소기점도에 있는 교회에 다닌다는 점에 착안해, 예수의 '12사도' 명칭을 딴 순례길을 만들기로 했다.

작가 섭외에 들어갔다. 김윤환 이원석 박영균 손민아 강영민 김강 등 국내 유명 작가 6명과 요라이 아브라함 슈발, 브루노 프루네, 얄룩 마스 등 프랑스 작가 4명이 1년간 섬에 거주하면서 12개 작품을 만들었다. 대기점도에 1번 예배당을 시작으로 5곳, 소기점도에 2곳, 소기점도와 소악도 사이의 노둣길에 1곳, 소악도에 1곳, 진섬에 2곳, 딴섬에 1곳 등 12km에 이르는 한국판 '섬티아고'가 조성됐다.

작가들 중 5번과 6번, 9번 예배당 등 3곳의 제작에 참여한 장 미셀 후비오를 이름 앞글자를 따 ‘장·미·씨’로 부를 정도로 국내외 작가들은 마을 사람들과 격의 없이 지냈다. 이들은 섬에서 구할 수 있는 절구 등을 작품에 많이 활용했다. 8번 예배당은 러시아 정교회 모습을 닮았지만, 섬 특산품인 양파를 형상화했다. 10번 예배당은 과거 폐어구들이 쌓여 악취가 심한 쓰레기장이었지만 예배당 건물 설치를 계기로 주변이 깔끔하게 바뀌었다. 관광자원 개발이 섬 환경 개선 효과로도 이어졌다는 게 마을 주민들 설명이다.

대형교회 재정 지원도 고사…누구나 찾는 '힐링' 장소로 입소문

전남 신안군 대기점도 선착의 1번 예배당 모습.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전남 신안군 대기점도 선착의 1번 예배당 모습.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기점·소악도를 직접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12사도 순례길'이라는 명칭 때문에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느껴져 자칫 손사래를 칠지 모른다. 하지만 12km의 길을 걷다 보면 기독교 신자들만의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톨릭 신자에게는 작은 공소, 이슬람교인에게는 작은 기도소,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소 등으로 12개 예배당이 어느덧 내 옆에 다가와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신안군에서도 관광객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1번 예배당을 ‘건강의 집’ 2번 예배당을 ‘생각하는 집’ 등의 방식으로 12곳의 예배당마다 12사도 외에 다른 이름을 붙여 놓았다. 김영근씨는 “한 번은 대형교회에서 재정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특정 종교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같아 고사했다”고 귀띔했다.

섬 출신 청년이 돌아와 지키는 섬

전남 신안군 소악도에서 카페를 운영중인 김현우(왼쪽)씨가 부친(김양훈)과 활짝 웃고 있다.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전남 신안군 소악도에서 카페를 운영중인 김현우(왼쪽)씨가 부친(김양훈)과 활짝 웃고 있다.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섬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섬 주민 대부분은 70대 이상 노인들이다. 50대가 청년 취급을 받을 정도다. 하지만 2011년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이장까지 지낸 김영근(56)씨를 시작으로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민박집만 10곳으로 늘면서 섬 주민들 사이에서도 활기가 돌고 있다.

중학생 때 섬을 떠나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2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소악분교 출신 김현우(30)씨는 부친이 운영하는 김 공장 일을 돕고, 순례길 관광객을 위한 ‘쉬랑께’라는 카페를 운영 중이다. 김씨는 “대학에서 전공한 해양바이오신소재공학이 아버지가 하시는 양식업과 관련된 것이라 처음에는 대를 잇기 위해 돌아왔다”고 말했다.

순례길이 생기면서 고향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느니, 일찌감치 부모님 일을 돕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던 중 순례길이 생기면서 카페 운영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에서는 관광객들에게 간단한 음료 등 먹거리를 무료로 제공한다. 대신 자율적으로 기부금을 받는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을 신안군을 통해 장학재단과 복지재단에 각각 500만 원씩 기부했다. 고향을 지키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발전하는 섬과 함께 성장해가는 어엿한 파수꾼이 된 셈이다.

지역경제 파급효과만 2년간 20억

전남 신안군 병풍도의 맨드라미 동산.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전남 신안군 병풍도의 맨드라미 동산. 신안=왕태석 선임기자

신안군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순례길 조성 등에 들어간 사업비는 80억 원 정도다. 하지만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지역경제에 미친 파급효과만 벌써 20억 원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이후 ‘힐링’이 최우선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기점·소악도를 찾는 관광객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신안군은 이에 따라 관광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최근 추가로 신축했다. 그간 마을협동조합을 통해 운영해 왔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외부에 위탁운영을 맡겼다. 군에서는 순례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성경에 등장하는 120여 종의 수목을 식재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조형물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또 이웃한 병풍도에 맨드라미 동산까지 조성해 볼거리를 풍부하게 만들어 놨다.

박관호 신안군 가고싶은섬지원단 담당은 “기점·소악도는 재방문율이 50% 이상으로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지역”이라면서 “이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점·소악도는

위치 :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
인구 : 60가구 108명
산업구조 : 농업 50%, 어업 20%, 기타 20%
주요 특산물 : 양파, 마늘, 김, 낙지 등


신안=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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