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검장 회의선 "사퇴 시점, 김 총장에 일임"
법안 내용에 조직 "충격" 검사들 줄사표 가능성
김오수 검찰총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 기능 완전 폐지)' 입법 강행 의지에 "직(職)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그가 일주일도 안돼 마지막 카드를 빼든 셈이다. 검찰 수장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여론전을 극대화하려고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 내부에선 총장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사퇴 시점이 적절치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1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직서는 이날 김 총장의 사의 표명이 나오기 전에 이미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됐다. 하지만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제외하면 대검 참모들도 사직서 제출 사실을 이날 뒤늦게 알게 됐다. 물론 김 총장이 11일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사의 표명은 '검수완박' 법안 통과 때 내던질 마지막 카드로 해석됐다.
김 총장은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무소속 양향자 의원 사·보임을 계기로 법안 강행 처리 움직임을 파악한 뒤 여론전을 본격화했고, 검찰 고위 간부 회의에선 "총장을 중심으로 적극 대처한다"며, 시나리오별 사퇴 시점까지 논의했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김 총장이 사퇴 시점은 자신에게 일임해달라고 했고,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모두 동의했다"고 전했다.
법조계에선 김 총장이 민주당의 입법 강행에 마땅한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고 판단하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총장은 지난 15일 국회를 찾아가 "검찰에 잘못이 있다면 책임은 제게 있으니 입법 전에 저를 먼저 탄핵해달라"고 요청하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최근 박병석 국회의장과 박광온 법사위원장을 잇따라 만나 '검수완박' 입법 반대 의사를 전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면담을 요청했지만 무산됐다. 여기에 윤석열 당선인이 민주당과 대립해온 한동훈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김 총장 입장에선 전의를 상실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검사들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기조에 보조를 맞춰온 김 총장을 줄곧 성토해온 것도 사의 표명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법무부 차관 재직시 수사권 조정 입법 과정에 관여한 '원죄'가 있는 상황에서, 1년 만에 검찰 수장으로서 수사권 박탈 국면까지 맞이하게 되자,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일선 검사들의 잇따른 사의 표명도 김 총장 결단을 앞당겼을 수 있다. 이복현 부장검사(13일)와 김수현 통영지청장(14일), 김정환 부장검사(16일)가 '검수완박'에 반발해 옷을 벗겠다고 선언하자, 집단 줄사표로 인한 업무 공백 우려가 제기됐다. 김 총장은 이날 검찰 구성원들에게 "자중자애하면서 업무에 한 치 소홀함이 없이 수행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총장은 18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법안의 부당성을 적극 피력하려던 계획도 없던 일로 하고 잠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들 사이에선 법안이 발의된 지 이틀 만에 총장이 직을 내던지자 "어정쩡하게 사퇴해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한 부장검사는 "총장의 마지막 카드가 애매한 시기에 허무하게 쓰였다. 검사들에게 더는 할 게 없으니 체념하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이처럼 검찰 내부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19일 예정된 전국 평검사 회의는 줄사퇴 여부를 가를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김오수 총장은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해 3월 사퇴하자 같은 해 6월 후임으로 취임했다. 그는 대선 직후 국민의힘이 거취 결정을 압박했을 때도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며 물러날 뜻이 없음을 내비쳤지만, '검수완박' 변수에 사의 표명을 하게 됐다. 김 총장이 물러나면 1988년 검찰총장 임기 2년 보장 제도 도입 이래 역대 총장 23명 중 임기를 못 채우고 떠나는 총장은 15명으로 늘어난다. 사표가 정식으로 수리되면 박성진 대검 차장이 총장 직무를 대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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