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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혼란스런 기억의 조각을 무대로…"소중한 기억, 돌아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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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혼란스런 기억의 조각을 무대로…"소중한 기억, 돌아보게 돼"

입력
2022.04.18 05: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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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배우 4인
김지철·김주연·마현진·강은나 인터뷰
대사보다 몸으로 표현하는 신체극
"2인 밴드 포함 배우 6명 합에 공들여"

조기 치매인 55세 남성의 혼란스러운 기억을 보여주는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의 한국 초연에 함께하는 배우 (왼쪽부터)마현진, 김지철, 김주연, 강은나가 7일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공연장에 앉아 있다. 최주연 기자

조기 치매인 55세 남성의 혼란스러운 기억을 보여주는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의 한국 초연에 함께하는 배우 (왼쪽부터)마현진, 김지철, 김주연, 강은나가 7일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공연장에 앉아 있다. 최주연 기자

쉰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한 남자. 주머니에 빨간 넥타이가 있는 재킷을 입으라는 딸의 말이 치매 때문에 흐릿해지면서 '재킷'이란 단어만 머릿속에 남았다. 옷장 속 재킷을 찾다 교복 재킷을 꺼내 입는 순간,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그리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뒤죽박죽 섞여 파도처럼 몰려온다.

2017년 영국 런던에서 호평을 받고 2019년에는 내한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이 14일 서울에서 다시 막을 올렸다. 이번에는 영국 창작진과 함께 한국 배우·스태프가 함께한다. 기억을 소재로 삶의 가치를 묻는 이 연극에 원캐스팅으로 참여하는 배우 4인을 개막을 일주일 앞둔 7일 공연장에서 만났다.

7일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공연장에서 만난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의 배우 4인(왼쪽부터 마현진·김주연·김지철·강은나)은 대사보다 주로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신체극(피지컬 시어터)'이라 서로의 합을 맞추는 연습에 더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주연 기자

7일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공연장에서 만난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의 배우 4인(왼쪽부터 마현진·김주연·김지철·강은나)은 대사보다 주로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신체극(피지컬 시어터)'이라 서로의 합을 맞추는 연습에 더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주연 기자

"이제 연습 3주차인데, 훨씬 오래된 것 같아요." 매일 10시간 넘는 연습 강행군에 배우들의 전우애는 단단해진 듯했다. 약속된 움직임이 워낙 많은 신체극이라 출연진들의 끈끈한 교감을 위한 훈련이 여느 작품보다 더 필요하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이 영국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관람했다는 배우 마현진(37)은 당시에도 "배우들의 연습량이 눈에 보였다"면서 "서로 보지 않고 (소품인) 의자를 밀어주는 장면 등에서 서로를 믿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고 되돌아봤다. 그 매력이 직접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도 됐다.

신체극이란 특성은 배우들에게 매력이자 도전이었다. 마현진과 함께 다른 신체극('템플') 출연 경험도 있는 김주연(29)은 "'무대에서 내가 말과 표정으로만 표현하는 게 아닐까'하는 결핍을 항상 느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면서 온전히 저로서 서 있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관객에게 다양한 공연을 선사하고 싶다"(김지철·34)는 바람도 있었다.

힘든 연습의 성과는 무대에서 증명됐다. 2회차였던 15일 공연에서 배우 4인은 소품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장면 전환과 같이 맞물려 돌아가는 70분의 공연 시간을 암전이 거의 없는 상태로 쉼없이 내달렸다. 팔의 각도 하나 달라지면 안 되는 미세 퍼즐을 맞춘 듯한 움직임은 관객의 몰입을 끌어냈다. 기욤 피지 연출이 배우들에게 항상 언급했다던 '마법 같은 순간'이 보였다. 음악과 배우의 잘 맞아떨어진 호흡도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퍼커션, 루프스테이션을 연주하는 2인조 라이브 밴드 음악이 감정을 전달하고 장면을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현진은 "사실 (출연진) 인터뷰는 6명이 했어야 한다"면서 밴드 멤버가 배우와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포스터. 연극열전 제공

연극 '네이처 오브 포겟팅' 포스터. 연극열전 제공

물론 '친절한 극'은 아니다. 기승전결이 있지 않고 대사도 적다. 하지만 김주연은 "주인공의 기억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하고 봐 달라"면서 "(대사는 적지만)오히려 서사가 매우 뚜렷하고 구체적"이라고 설명했다. 무용극을 많이 했던 강은나(34)는 몸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같지만 이 작품은 "스토리텔링이 있고 감정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비교했다.

이들은 '네이처 오브 포겟팅'의 관객이 자신의 일상을 환기하는 시간을 갖길 바랐다. 조기 치매는 하나의 극적 장치일 뿐이고 누구나 주인공을 보면서 '나에게 가장 강렬한 순간, 소중한 순간은 무엇일까'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은나는 "공연 자체를 기억하기보다는 관객들이 각자 평범한 일상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고 그것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관람 팁도 있을까. "마지막 장면 직전에 배우들이 달려가는 장면을 주의 깊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한 인물의 전체적인 기억 세포들이 다 다르게 다가온다고 할까요? 이런 부분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어요."(김지철) 공연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30일까지.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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