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가 세게 한 번 맞았구나!’
지난해 1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위촉 발표가 났을 때 든 생각이다. 경쟁부문 심사를 주도하게 된 이는 봉준호 감독이었다. 칸영화제가 오랫동안 정성을 쏟아 온 주요 영화인 중 한 명이다.
칸영화제는 2006년 ‘괴물’을 시작(감독주간 상영)으로 줄곧 봉 감독에게 관심을 줘왔다. ‘마더’(2009)를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초청했고, ‘옥자’(2017)와 ‘기생충’(2019)을 '경쟁'부문에 올렸다. 2011년엔 봉 감독을 '황금카메라상'(신진 감독 작품에 주는 상) 심사위원장으로 초대했다. ‘기생충’에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한국영화 최초로 안겨주기까지 했다. 반면 봉 감독이 칸영화제의 경쟁자인 베를린영화제나 베니스영화제를 자신의 영화와 함께 찾은 적은 없다.
‘기생충’으로 봉 감독은 칸영화제에 더욱 특별한 존재가 됐다. ‘기생충’은 ‘마티’(1955) 이후 64년 만에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을 동시에 가져간 영화다. 칸영화제는 비영어 영화 최초로 오스카 최고상을 가져간 ‘기생충’ 신화가 자신들로부터 비롯된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눈에 띄는 인연이 없었던 베니스영화제가 봉 감독을 심사위원장으로 불쑥 위촉했으니, 칸영화제로선 예기치 못한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칸영화제가 가만 있을 리 없다. 반격에 나섰다. 베니스영화제보다 빠른 개최 시기를 활용했다. 지난해 7월 6일 개막식에 봉 감독을 깜짝 손님으로 초대해 개막 선언을 맡겼다. 봉 감독이 영화학도, 영화 애호가들과 질의응답을 나누는 마스터클래스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9월 열린 베니스영화제로선 김샌 느낌이었을 것이다. 두 영화제의 신경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더욱 치열해진 생존싸움을 감지했다.
칸영화제는 다음 달 17~28일 열릴 영화제의 상영작 47편을 지난 14일 공식 발표했다. 여러 작품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영화는 ‘헌트’다. 배우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이다. 주연까지 겸했다.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인 정우성이 연기호흡을 맞췄다. ‘헌트’는 '미드나잇 스크리닝'부문 초청장을 받았다. 완성도 높은 장르 영화를 심야에 상영하는 부문이다. ‘헌트’는 정보기관 요원들을 중심에 둔 첩보 액션물이다.
영화제들은 요즘 절박하다. 세계 최고라는 수식이 따르는 칸영화제라고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반전이 필요하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몰입하는 방구석 1열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내야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지구촌 누구나 알 만한 스타가 된 이정재의 영화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카드다.
‘헌트’의 칸영화제 진출은 어느 정도 예감됐다. 칸영화제의 조바심이 느껴져서였다. 칸영화제는 톰 크루즈 주연의 할리우드 대작 ‘탑건: 매버릭’이 칸에서 첫 상영될 것임을 상영작 공식 발표 전에 먼저 알렸다. 개막작이 아닌 초청작을 별도로 밝히는 건 이례적이다. 변혁의 시대, 화끈한 스타가 절실한 시기, 칸영화제는 크루즈와 함께 이정재를 흥행 승부수로 띄웠다는 생각이 든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 영화 ‘브로커’는 경쟁부문에 올랐다. 적어도 한국인에게 올해 칸영화제는 볼거리가 쏟아질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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