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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옷값 공격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입력
2022.04.09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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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화려한 옷의 역사와 여성 혐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비평 전문가 이연숙 작가는 영화, 미술, 만화 등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통해 성별화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장 차림의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정장 차림의 김정숙 여사가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부인의 옷값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이 입은 수수한 후드티셔츠와 슬리퍼 차림 사진이 보도되었다. 이리하여 누구의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의 혈세로 사치하는 현 영부인' 대 '소박하고 수수한 차기 영부인'이란 구도가 만들어졌다. 현 대통령 부인의 옷값과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에 대해서는 내가 이 글에서 다룰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치공세를 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윤석열 당선인을 직접 공격하면 되는데 왜 그 부인을?

이 점에 대해서는 지난 젠더살롱 31회 '정치에 드러나는 여성혐오 패턴' 편에 쓴 적이 있다. '어떤 남성 인물을 공격할 때에 그 남성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을 공격하는 것은 여성혐오가 정치에 이용되는 흔한 패턴이다'라고. 이 글에서는 위의 기본 입장에 더해서 남성 본인의 의상이 아니라 부인들의 의상과 장신구, 가방, 신발 등등을 더 주목하고 감시하는 이유를 쓰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 앞에서 후드티를 착용한 채 편안한 모습으로 경찰특공대의 폭발물 탐지견을 끌어안은 사진이 4일 공개됐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 앞에서 후드티를 착용한 채 편안한 모습으로 경찰특공대의 폭발물 탐지견을 끌어안은 사진이 4일 공개됐다. 연합뉴스

따져보자. 문 대통령이나 윤 당선인의 양복도 저렴한 편은 아닐 것이다. 과거 대통령의 경우를 찾아보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수트나 화장품이 더 호화롭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왜 대통령 본인이 아니라 영부인의 사치에 집중하는 것일까?

뮤지컬 영화 '에비타' 중 '레인보우 하이'에서 아르헨티나 영부인 에바 페론이 치장을 하고 있는 장면. 영화는 화려한 의상과 꾸밈으로 매력을 발산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사랑과 숭배를 받고, 세계 순방을 떠나서는 아르헨티나의 동맹국을 얻으려는 에바 페론의 정치적 의도를 표현한다. 유튜브 캡처

뮤지컬 영화 '에비타' 중 '레인보우 하이'에서 아르헨티나 영부인 에바 페론이 치장을 하고 있는 장면. 영화는 화려한 의상과 꾸밈으로 매력을 발산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사랑과 숭배를 받고, 세계 순방을 떠나서는 아르헨티나의 동맹국을 얻으려는 에바 페론의 정치적 의도를 표현한다. 유튜브 캡처


일단 남성보다 여성 복식이 더 화려해서 눈에 잘 띄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현대의 남성복 정장 슈트 색상은 대개 검정색이나 회색, 짙은 청색 등이다. 대부분 무채색이거나 채도가 낮다. 디자인도 기본 정장 스타일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는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게 그 옷 같아 보여 한두 벌을 돌려 입는지 백 벌 천 벌을 갈아입는지 비싼 원단을 썼는지 한눈에 알아내기 힘들다. 여성복은 그렇지 않다. 색상도 디자인도 다양하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작은 사진만을 보고 각각 다른 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양 복식사를 살펴보면, 근대 초기까지는 상층 계급의 경우 남성복도 여성복 못지않게 화려했다.

도덕과 권력의 상징이 된 '검은 정장'

카를5세 초상화. 위키피디아 캡처

카를5세 초상화. 위키피디아 캡처


화학 염료가 없던 시절, 비싼 천연 염료를 사용하여 밝고 화사한 색상으로 염색한 천으로 지은 옷을 입는 것은 상류층이란 증거였기에 당시 상류층은 남녀 구별 없이 모두 화려한 옷을 즐겨 입었다. 그러다 15세기부터 옷 색깔이 진해지고 검은색이 점차 유행하기 시작했다. 색의 역사를 보면, 검은색 옷의 유행 시작을 부르고뉴 공국에서 찾는다. 부르고뉴의 선량공 필리프는 1419년 프랑스군에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복수를 다짐하며 검은 옷을 입었는데, 이게 기록상 시초다. 이로 인해 검정색 옷은 효심, 즉 도덕심과 정치적 권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부르고뉴 공국의 검은색 옷은 에스파냐 제국에서 대유행했다. 부르고뉴 공녀의 손자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에스파냐 제국 황제도 겸했기에 에스파냐에서는 카를로스 1세)는 황후 이사벨과 사별한 충격으로 이후 검은색 옷만 입었다. 이에 황제를 보필하는 귀족들도 모두 검은 옷을 입게 되었다. 카를 5세의 아들인 펠리페 2세도 두 번째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검은색 옷을 입었다. 그리하여 검은 옷이 도덕심과 권력에 더하여 에스파냐 왕실과 제국까지도 상징하게 되자, 상복과 관계없이 검은 옷은 에스파냐 왕실 남성들의 정장이 된다. 그런데 당시 에스퍄냐 왕실 남성들의 초상화를 보면, 검정 옷이지만 수수해 보이지는 않는다. 벨벳 등 호사스런 천을 사용하고 귀금속 장식품을 착용하여 권위적이고 세련된 화려함을 보인다. 이런 권력자의 화려한 검은 옷차림이 소박해지는 변화는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던 네덜란드에서 일어난다.

"나태한 귀족과 달라"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으로

렘브란트가 1662년 그린 직물 제조업자들 초상화. 위키피디아 캡처

렘브란트가 1662년 그린 직물 제조업자들 초상화. 위키피디아 캡처


네덜란드의 독립 전쟁은 에스파냐라는 외세에 저항하는 독립 운동이면서 상공업 부르주아 계층이 봉건적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 싸운 부르주아 혁명이며, 종교 탄압에 저항한 종교 전쟁이기도 하다. 도시에 모인 네덜란드의 개신교도 상공업자들은 가톨릭 교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간섭과 탄압에 저항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에스파냐 제국에 맞서 싸우며 단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시민들은 같은 색의 옷을 입었다. 바로 검은색. 이제 수수한 검은 옷과 하얀 칼라 차림은 타락한 늙은 제국에 맞서는 신생 공화국 칼뱅파 부르주아의 상징이 되었다. 역시 검은색이 도덕심과 결합한 케이스다. 이후 네덜란드가 에스파냐를 물리치고 해양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검정색은 제국과 힘을 상징하게 되었다.

부르고뉴, 에스파냐, 네덜란드에 이어 제국의 검정색은 영국에서도 유행한다. 청교도 혁명 당시 올리버 크롬웰의 청교도들이 즐겨 입던 검정색은 왕정 복고 시기 프랑스에서 망명했다가 돌아온 왕의 영향으로 주춤하다가 19세기에 들어서 다시 유행했다. 시작은 상복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부군과 사별 후 40년간 상복을 입었다. 여왕은 대영제국의 번영기를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검정색 옷은 이번에도 제국질서의 상징이 되었다가 곧 제국을 지배하는 엘리트의 제복이 되었다.

루이14세 초상화. 프랑스 절대 왕정 군주의 화려한 차림을 확인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루이14세 초상화. 프랑스 절대 왕정 군주의 화려한 차림을 확인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가장 드라마틱한 복식사의 전환과 검정 옷의 등장은 프랑스에서 볼 수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부르주아 남성들은 귀족의 화려한 의복과 차별화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도덕성과 우월감을 드러내려 했다. 그들은 퀼로트(반바지)가 아니라 상퀼로트(긴바지)를, 화려한 색상이 아니라 검은색 정장을 입었으며 바지 대님, 리본, 레이스를 남성 옷에서 떼어 버렸다. 화려한 색상과 장식은 귀족 계급의 나태함과 사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왕정 복고 시대나 나폴레옹 제정 시대에 화려한 복식이 부활하기도 했지만, 검은색은 계속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의 색이 되어 패션 제국 프랑스의 활약에 힘입어 오늘날 기본적인 남성 정장의 색상으로 고정되었다.

남성 대신 화려하게… '간판'이 된 여성

그림 '루이 필리프와 그의 가족이 베르사유 박물관 방문'. 상류계급 남성들이 흑과 백색에 장식이 절제된 옷을 입고 있다. 반면 여성, 아동, 시종들은 화려한 색상의 옷감에 레이스, 리본 장식이 있는 의상을 입고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그림 '루이 필리프와 그의 가족이 베르사유 박물관 방문'. 상류계급 남성들이 흑과 백색에 장식이 절제된 옷을 입고 있다. 반면 여성, 아동, 시종들은 화려한 색상의 옷감에 레이스, 리본 장식이 있는 의상을 입고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구체제 귀족들의 복식에 사용하였다고 해서 19세기에 기피되던 화려한 원색과 레이스 등 과도한 장식이 여전히 사용되던 곳이 있었다. 바로 여성복과 아동복, 하인의 제복. 여성과 아동과 하인들의 공통점은 뭘까? 다 가부장의 지배를 받는 위치에 있는, 가부장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아직도 열등한 귀족 계급의 특징이 일부 남아 있는 옷을 입힌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베블런의 저서 '유한계급론'에 의하면 도덕성을 위해 화려한 옷을 입을 수 없었던 부르주아 가부장 남성은 자신 대신 아내, 딸, 연인에게 호화로운 치장을 하게 만들어 자신의 지위와 재력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현상을 역사학자 필리프 페로는 저서 '부르주아 사회와 패션'에서 "여성, 남편의 간판"이라고 표현하였다. 여성이 남편의 간판으로서 화려하게 치장해야 하는 사회에서 사치의 상징인 화려한 옷을 입는 여성은 자연히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이등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또 여성은 자기 자신을 위한 생산 활동이나 소비를 할 수 없고 가부장 남성의 지위를 위해 '대리소비'해 주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벌어서 소비를 해도 남성을 위한 소비가 아니면 과소비를 한 '된장녀'라고 욕 먹게 되는 이유다.

의상 사치 논쟁? 공격할 재산 취급하는 것

19세기는 현대 서구 복식의 스타일이 완성된 시기다. 19세기 여성들은 상복으로 입는 경우 외에 일상복으로 검은색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남성의 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소속된 주인인 가부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채색이 아니라 화사한 색의 옷을 입고 꾸며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점에서 눈에 띄는 옷을 입고 꾸밈을 하는 여성은 이등시민으로 여겨져 언제라도 남편이나 아버지, 연인 관계에 있는 남성의 적들에 의해 공격당할 수 있다. 전시에는 인명 살상뿐만 아니라 상대의 재물도 파손하는 법,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동산(動産), 즉 움직이는 재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지자들이 '국모(國母)' 운운해도 21세기 대한민국 영부인의 위치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사치한 여성, 과소비하는 여성을 혐오하여 정치적 공격 대상으로까지 여기는 바탕에는 여성을 이등시민이자 남성의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유구한 성차별의 역사가 있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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