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 공격 완화 발표하고 곧바로 공세 강화
"협상 낙관" 발언 하루 만에 "돌파구 없다" 번복
"돈바스 병력 재배치 시간 벌기 위한 기만 전술"
러시아가 “평화협상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북부 체르니히우에서 군사작전을 축소하겠다고 약속하고선 도리어 공격을 강화했다.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안보 방안 등 협상 내용에 관해서도 크렘린궁은 “진전이 없었다”며 말을 180도 바꿨다. 말과 행동이 모순되고, 외교 메시지가 수시로 뒤집힌다. 병력을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동안 우크라이나군의 대응을 늦추기 위한 기만 전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4월 1일 양국 간 협상이 재개되지만, 전쟁 종식에 대한 기대는 더 멀어진 분위기다.
미국 CNN방송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은 키이우와 인근 도시들, 체르니히우에 끊임없이 포탄을 퍼부었다. 24시간 동안 키이우 주변 폭격 횟수는 30회가 넘었다. 비아체슬라우 차우스 체르니히우 주지사도 “러시아군이 밤새도록 포격해 도서관과 주택이 파괴됐다”고 비판했다. 전날 터키에서 5차 협상을 마친 러시아 대표단이 두 지역에 대한 공격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영국 국방부는 31일 보고서에 “러시아는 키이우에서 일부 철군했으나 여전히 동쪽과 서쪽에 포진해 있다”며 “며칠 안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이번 러시아군 철수 약속을 병력 재배치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북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를 점령한 부대 일부도 이날 벨라루스로 이동했다.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비롯한 북부 전선에서 5주 넘도록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한 상태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키이우 인근 병력 20%가 재배치됐다”며 “부대를 재정비한 뒤 다른 전선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군당국도 “러시아가 키이우 포위 계획을 포기한 것처럼 오도해 우크라이나군 지도부에 혼선을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군사력 재배치 목표는 분명하다. 돈바스 지역 완전 장악이다. 실제 서방과 우크라이나 군당국은 “최근 며칠간 돈바스에서 러시아군의 공습과 폭격이 강화되고 있다”는 보고를 잇따라 내놨다.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 소속 용병 1,000명이 이미 돈바스에 투입됐다는 사실도 미 국방부가 확인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주요 임무를 완료한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서 병력 재편성이 이뤄지고 있다”며 “목표는 돈바스 완전 해방 작전 완수”라고 아예 대놓고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가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31일 인도주의 대피로 개설을 약속한 것도 이러한 전략 변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도시 함락 마지막 단계로서 진군에 걸림돌인 주민들을 도시 밖으로 내보낸 뒤 완전한 통제권을 거머쥐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돈바스와 이어진 마리우폴을 점령하면 러시아군은 분산된 병력을 돈바스에 집중할 수 있고, 물자 보급망도 해상과 육로를 모두 확보하게 된다. 미 행정부 기밀 보고를 받은 상원 정보ㆍ국방위원회 소속 앵거스 킹 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동부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크라이나군을 포위ㆍ압박하기 시작했다”며 “전쟁이 결정적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협상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러시아 협상단이 터키에서 모스크바로 복귀한 지 하루 만에 러시아 측 입장은 “만족스러운 대화”에서 “성과 없는 회담”으로 번복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키이우에 대한 새로운 공격도 크렘린궁 발신 메시지의 혼란상이 반영된 듯하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짚었다. 화상으로 열리는 6차 협상도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와 협상 중이지만 구체적인 내용 없는 말뿐”이라며 “우리는 영토 1m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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