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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푸틴에게 넘어간 칼자루… 전쟁 종식까지는 ‘가시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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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푸틴에게 넘어간 칼자루… 전쟁 종식까지는 ‘가시밭길’

입력
2022.03.30 19:38
수정
2022.03.30 22:0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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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집단 안보' 요구… 어느 나라 참여할지 불확실
푸틴, 우크라 EU 가입 허용할지 의문, EU 입장 불분명
크림반도·돈바스 지위 문제, 협상 타결에 최대 걸림돌
우크라 중립국화·비무장화 수용, 푸틴 요구 관철된 셈

5차 평화협상에 나선 러시아 대표단(오른족)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29일 터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마주 앉아 있다. 아나돌루=연합뉴스

5차 평화협상에 나선 러시아 대표단(오른족)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29일 터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마주 앉아 있다. 아나돌루=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터키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5차 평화협상 후 전쟁 종식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분쟁 지역 크림반도 지위, 러시아 군사 활동 축소, 양국 정상회담 개최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입장 차를 상당히 좁히면서다. 양측 모두 “건설적 대화였다”며 만족감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낙관하기는 이르다.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없을뿐더러 국제사회 동의와 법적 절차 등 숱한 걸림돌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낼 의지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화를 받아들이는 대신 ‘집단 안보 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나토 회원국이 공격당할 경우 다른 회원국이 상호 공동 방어를 하듯, 우크라이나도 국제사회가 보증하는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중국ㆍ러시아)과 터키, 이스라엘, 폴란드, 캐나다, 이탈리아, 독일 등을 잠재적 안보 보장국으로 거론했다. 우크라이나 협상단 일원인 올렉산드르 찰리 전 우크라이나 외무차관은 “집단 안보 체제를 약속한다면 외국 군대나 군사기지를 주둔시키지 않고, 군사 훈련도 안보 보장국 동의 하에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안보 보장국은 우크라이나가 침략당했을 때 무기 지원, 파병, 영공 폐쇄 등 군사 개입 의무가 있는 탓에 선뜻 참여할 나라가 있을지 의문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조약 형식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국제조약은 각국 의회에서 비준을 받아야 하는 터라 정치적 부담이 크다. 러시아 주재 영국 외교관 출신인 이언 본드 유럽개혁센터 외교정책 연구원은 “아직 어느 나라도 우크라이나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다”며 “나토에 준하는 집단 방위 체제가 구성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미국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유럽연합(EU) 가입도 희망 고문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EU 합류를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으나 전문가들은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로빈 니블렛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장은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면 러시아보다 더 빨리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며 “그러면 우크라이나가 남한이고 러시아가 북한이 되는 셈인데 푸틴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혹여 러시아가 가로막지 않는다 해도 EU가 분쟁국인 우크라이나를 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EU 조약엔 집단 방위 조항도 포함돼 있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EU가 직접 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우크라이나의 EU 조기 가입 요청을 EU가 거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29일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 주정부 청사가 러시아의 공격을 당해 크게 부서졌다. 이날 폭격으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33명이 다쳤다. 미콜라이우=AP 뉴시스

29일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 주정부 청사가 러시아의 공격을 당해 크게 부서졌다. 이날 폭격으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33명이 다쳤다. 미콜라이우=AP 뉴시스

영토는 최대 난제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 지위에 관해 향후 15년간 러시아와 협의하겠다고 밝혔지만, 러시아는 협상 이튿날 언론 브리핑에서 “크림 지역은 러시아의 일부이고, 러시아 헌법은 러시아 영토의 운명에 대해 논의하는 걸 금지한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게다가 크림반도보다 훨씬 첨예한 돈바스 지위 문제에 관해선 양측 모두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단 1인치도 의견 접근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돈바스 지역 일부를 점령한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은 돈바스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고 있고, 러시아도 “군사작전 목표를 돈바스 해방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내줄 가능성 또한 전혀 없다.

이번 협상 내용을 보면 진정한 승자는 푸틴 대통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공 이전부터 줄기차게 요구해 온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비무장화를 관철시켰고, 우크라이나가 ‘타협 불가’를 천명했던 영토 일부에 대한 양보까지 받아냈다. 푸틴 대통령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상호 신뢰를 증명하기 위해” 수도 키이우와 북부 체르니히우에 주둔한 일부 병력 철군을 약속하고도, 동남부 요충지 마리우폴과 남부 미콜라이우를 무차별 폭격했다는 사실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미국 CNN방송은 “전면적 휴전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협상을 우크라이나가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모두가 끊임없이 얘기했듯 결국 모든 일은 단 한 사람, 푸틴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고 짚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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