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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노동자에 "죽어"… 日 도쿄디즈니랜드서 직장 내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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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노동자에 "죽어"… 日 도쿄디즈니랜드서 직장 내 괴롭힘

입력
2022.03.30 18: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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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복장 근무 직원, 산재 신청 후 괴롭힘
지방법원 “사측 안전 배려 의무 위반” 인정
"죽어라" 발언 등은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안 해

일본 지바현 소재 도쿄디즈니랜드의 정문.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지바현 소재 도쿄디즈니랜드의 정문.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꿈과 마법의 나라’로 불리는 도쿄 디즈니랜드. 이곳에서 캐릭터 인형 탈을 쓰고 쇼에 출연하던 여성 직원 A(41)씨는 5년 가까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지바지방재판소(지방법원)는 회사 측이 ‘안전 배려 의무’를 위반했다며 A씨에게 88만 엔(약 874만 원)을 배상하라고 29일 판결했다.

30일 아사히신문과 NHK 등에 따르면, A씨는 초등학생 시절 지켜본 쇼에 감동해 도쿄디즈니랜드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고교 졸업 후 국내 다른 테마파크 등에서 경력을 쌓아 오디션에 합격, 2008년 4월부터 근무했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는 밖에서 생각하는 이미지와 크게 달랐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으로 고용은 불안한 반면 선후배 관계는 극도로 엄격했고, 심할 경우 A씨의 물건을 숨기는 식으로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다.

2013년 2월, 탈을 쓰고 업무를 하던 중에 손님에 의해 오른손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후 본격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산재 신청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더니 상사는 오히려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 “너는 마음이 약하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다른 상사는 “병이 났나, 그럼 죽어버리지”라고 쉽게 말했다. 이후 A씨는 과호흡과 우울 증상이 발생했고 동료로부터 고립됐다. 2018년 7월 A씨는 “5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며 도쿄디즈니랜드의 운영회사인 ‘오리엔탈랜드’와 상사 등을 대상으로 330만 엔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A씨의 제소 후 회사는 “캐스트(출연진)에게는 정보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사규가 있다”는 위협성 문서를 보냈고, 직장 내 괴롭힘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모욕적 발언을 한 상사는 진술서에서 A씨의 제소가 “우리가 지켜 온 게스트(손님)의 꿈을 깨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회사 측이 “직원의 상태가 나빠진 것을 파악한 시점에서 직장 동료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등 (A씨가) 고립되지 않도록 직장 환경을 정비했어야 했다”며 위자료 등 88만 엔을 지불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죽어버려라”라고 말한 상사의 발언 등은 “폭언은 맞지만 사회 통념상 불법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3년 8개월에 걸친 재판을 마친 A씨는 “디즈니가 나쁜 것이 아니라 노동 환경을 시정하지 않는 ‘오리엔탈랜드’라는 회사가 나쁜 것”이라며 “종업원에게도 ‘꿈과 마법의 왕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씨의 변호사는 판결이 “상사를 포함한 조직 전체가 직장 환경을 악화시키고 이를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오리엔탈랜드는 “우리 측 주장이 일부 인정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무거운 복장으로 과중한 노동을 계속한 결과 신경계·혈류장애 통증을 일으키는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다른 여성도 오리엔탈랜드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도쿄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출연진이 어린이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노동 강도는 강하고 임금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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