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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린 엄마 "혹시 난치병인가요?"...실은 검색이 낳은 '두려움병'

입력
2022.04.05 17: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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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최연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병원에 찾아와 아이가 희소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묻는 엄마들이 있다.

첫 번째 사례다. 한 엄마가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애가 대변을 못 본다는 것이었다. 닷새 만에 본 변은 어른의 것만큼 크고 딱딱했다고 한다. 항문은 찢어졌는지 피가 묻어 있었고, 아이는 양 다리를 꼭 붙인 채 끙끙거렸다. 대변을 보게 해주려고 뒤로 안아 다리를 벌려주면 소스라치게 놀라 울었다. 엄마는 내게 물었다. "혹시 선천성 거대결장증 아닌가요?"

도대체 엄마는 어떻게 아이가 이름조차 생소한 이 병을 안고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인터넷이었다. 아이가 계속 변을 못 보니까 엄마는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검색창에 ‘소아 만성 변비’라고 쳤더니 ‘선천성 거대결장증’이라는 병을 의심해야 한다는 글이 눈에 띄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병인데, 증상이 변비로 시작한단다. 자세히 보니 몇몇 증상이 자기 아이랑 똑같았다. 걱정이 밀려왔고 엄마는 서둘러 병원에 오게 된 것이었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국민의 20~30%가 가지고 있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병이 아니면서 잦은 복통과 설사 혹은 변비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른들이야 자신 판단으로 큰 병이 아닌 걸 확신하므로 참고 생활하지만, 아이가 만성으로 복통과 설사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이는 학교에서 설사라도 할까봐 불안해서 아침이나 점심 식사를 종종 거른다. 이로 인해 체중도 빠진다.

엄마는 아이의 증상을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영락없는 ‘크론병’이다. 크론병은 희귀병이다. 엄마는 공포가 밀려왔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어디 이 사례뿐이랴.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면 뇌막염보다는 감기일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쁘고 중한 병만 최고순위에 올라가 있어 눈에 잘 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다 희귀병이다.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면 맹장염(충수돌기염)을 의심해야 한다는 건 이제 전 국민의 상식이 됐다. 충수돌기염이 우하복부 통증이 있는 것은 맞지만, 우하복부 통증이 다 충수돌기염은 아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오른쪽 아랫배에는 장임파선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바이러스 질환일 때 쉽게 붓고 아프다. 그래도 조금만 기다리면 감기처럼 다 낫는다. 하지만 만약 충수돌기염이고 자칫 맹장이 터지면 복막염이 되어 고생한다는 잠재적 위험성 때문에 쓰지 않아도 될 항생제와 여러 검사가 처방된다. 의사도 배아픈 환자에게 충수돌기염의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닐 것 같아도 만에 하나 진단을 놓치면 그 비난이 두렵기 때문이다.

모든 게 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병에 관한 전문가인 의사도 두렵기는 매한가지다. 아픈 당사자인 환자는 당연히 두렵고, 가족도 두렵지만, 의사도 진단이 애매할 경우 두려움을 느낀다.

옆집 아이가 폐렴에 걸려 입원했다. 우리 아이를 보니 감기 기운이 있고 미열도 난다. 엄마는 불안해진다. 가벼운 감기면 괜찮지만, 옆집 애가 폐렴이라는데 혹시 우리 아이도? 입원하게 되면 직장에 휴가도 내야 하고 여러 스케줄이 꼬인다. 바로 병원에 아이를 데려간다. 의사가 보기엔 목감기여서 특별한 치료는 필요없다고 했지만, 엄마는 폐렴이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계속 묻는다. 엄마가 우기니 의사도 불안해진다. 두 사람은 그래서 센 약을 미리 쓰기로 합의한다. 그래서 바이러스 질환에는 무용지물인 항생제가 처방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두 어른은 만족했지만, 항생제를 먹는 사람은 아이다. 어려서부터 잦은 항생제 노출은 내성을 조장하고 나중에 정말 항생제가 필요할 때 사용을 못 할 수도 있다. 결국 어른들의 두려움의 피해자는 아이가 된다.

사람들은 네거티브 정보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진화의 역사가 말해주듯, 인간은 생존을 위해 두려워하고 늘 조심하며 자신의 생명을 챙기는 일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병을 앓고 치료를 받으며 누군가는 그 경험담을 인터넷에 올리는데 호전된 경우보다 나빠지거나 고생했던 사연이 더 많이 올라온다. 나쁜 얘기는 날개 달린 듯 잘도 퍼져 나간다.

'선천성 거대결장증' 얘기로 돌아가보자. 소아 변비는 항문통증이 두려워 변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의 자연스러운 생존전략이다. 장기간 변을 묽게 만들어 좋은 경험을 쌓아야 좋아진다. 하지만 어른들은 눈앞의 아이 모습에만 반응해 항문을 자극하거나 관장을 해 아이의 공포만 배가시킨다. 아이에겐 트라우마가 된다.

어른에게는 아이의 공포는 보이지 않고, 인터넷에 나오는 선천성 거대결장증만 무섭다. 선천성 거대결장증을 검사하려면 또다시 아이의 항문에 관을 넣고 조영제를 투여하거나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항문이 공포인 아이에게 그보다 더한 트라우마는 없다. 악순환이다.

나의 두려움은 다시 남에게 전이되고 누군가 피해를 보게 돼 있다. 그 누군가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예측하지 못한다. 정보화 시대에 모든 것이 빨라져 편해졌지만,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와 그 속도는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속도도 빠르게 만들어 우리 일상은 늘 불안과 걱정이 넘친다. ‘두려움병’은 그렇게 탄생됐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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