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추억이죠" 비극 들춘 '돼지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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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추억이죠" 비극 들춘 '돼지의 왕'

입력
2022.03.29 15:47
수정
2022.03.2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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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연상호 감독·드라마 작가 탁재영 인터뷰
"학폭 더 고도화돼"

'돼지의 왕' 애니메이션을 만든 연상호(왼쪽) 감독과 드라마로 각본한 탁재영 작가. 티빙 제공

"재밌는 추억이 많았는데." 티빙 드라마 '돼지의 왕'에서 카센터 사장인 정희(최강제)는 중학생 때 그가 날마다 괴롭힌 동창 경민(김동욱)을 알아보지 못하고 학창 시절의 낭만을 늘어놓는다. 피해자에겐 치욕의 순간이 가해자에겐 추억으로 남았다. 학교폭력(학폭)에 대한 망각은 그래서 끔찍하다.

드라마는 학폭의 후유증과 비극의 현재성에 집중한다. 어른이 된 경민은 옛 학폭 가해자를 한 명 한 명 찾아 응징한다. '부산행'(2016)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장르 영화의 거물이 된 연상호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 원작과 드라마가 가장 다른 대목이다. 이 변화에 시청자도 호응하고 있다. 29일 티빙에 따르면 지난주 '돼지의 왕' 이용자는 공개 첫 주 대비 1.5배 늘었다. 이날 화상으로 만난 탁재영 드라마 작가와 원작자인 연 감독은 "트라우마의 현재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폭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폭력이 성인이 돼서도 어떤 영향을 주는지 깊이 있게 다루고 싶었어요. 피해자들에겐 끔찍한 상처잖아요. 원작에 이런 내레이션이 마지막으로 나와요. '이곳은 아직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 그보다 더 차가운 인간들이 뒹구는 세상이다'란 내용이죠. 이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하고요."(탁 작가)

"'돼지의 왕'(2011) 만들 때 '학폭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란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그 답을 11년 만에 드라마로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지금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가해자를 보여주면 어떨까에서 출발해 복수극이 시작됐죠."(연 감독)

드라마 '돼지의 왕'에서 경민(김동욱)이 환영을 보고 집 지하 창고에 주저 앉은 모습. 중학생 때 학교폭력을 당한 그는 결혼 후에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티빙 제공


요즘 대중문화에선 학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1월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을 비롯해 올 상반기 개봉을 앞둔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모두 학폭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학폭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급부상한 데 따른 영향이다.

12년 전 공개된 '돼지의 왕'의 시의성은 어떻게 담보될까. 연 감독은 "성과주의와 계급 갈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학교 등 하나의 세계관이 여전히 강요되고 있다"며 "이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답했다.

"저도 딱히 잘난 게 없어 학창 시절에 '조용히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 가면 바로 알게 되거든요(웃음). 그런데 학교폭력은 더 고도화되고 있죠. 특정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서 치유할 길이 마련돼야 하는데, 여전히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요. 학교나 사회나 여전히 하나에 '올인'할 것을 강조하는데, 여러 세계관을 갖고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의 한 장면. 스튜디오 다다쇼

'돼지의 왕', 이 제목 속 돼지는 사육당하고 지배당하는 비극적 운명에 놓인 학폭 피해자들에 대한 섬뜩한 은유다. 연 감독은 원작에 '개는 태어날 때부터 사랑받지만, 돼지는 사람들에게 잡아먹힐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적었다. 이날 기준 4회까지 공개된 드라마에선 가해 학생뿐 아니라 학폭에 침묵하는 선생님 등 기성세대도 직격한다. 다만, 원작에 없는 연쇄살인이 초반에 펼쳐지면서 폭력성이 높게 그려졌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기는 하지만, 사적 복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방식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탁 작가는 "중후반부로 가면 경민의 복수가 과연 옳은 방식인가에 대해 질문이 두드러질 것"이라며 "초반엔 학폭 피해자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리얼하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경민은 살인사건 현장에 '종석아, 너도 함께해야지'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종석(김성규)은 현재 형사로, 어려선 경민과 함께 학폭을 당했던 학생이었다.

드라마를 6회까지 먼저 봤다는 연 감독은 "드라마에선 경민이 아내와 행복하게 살다 트라우마로 변한다"며 "뒤틀린 남성성이 갖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그려져 좋았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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