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주 52시간 현장에 맞게 유연 적용 공약
제품 출시 어려움 겪었던 회사는 '집중 근무' 반겨
'워라밸' 깨질까 걱정하는 직장인...노사 동상이몽
"다시 사무실에 침대 놓고 주 100시간씩 일해야 하나요?"(전자업계 15년차 차장 A씨)
"서비스 출시 직전 근무 시간 때문에 애먹을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스타트업 인사 담당자 B씨)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친기업 행보에 정보기술(IT)업계에선 벌써부터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당장 사측은 현 정부에서 추진한 주 52시간제의 대폭 수정까지 점쳐가면서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야근과 특근을 반복했던 과거의 '크런치모드' 부활 등도 떠올리면서 우려하고 있다.
연간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 예상...기업은 '환영'
22일 업계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지난 21일 경제6단체장을 만나 "기업이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게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경제단체장들은 노동 관련 법제 개정 등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윤 당선인이 이미 공약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대폭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어 대통령 취임 이후엔 주 52시간제에 중대한 변화도 예상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란 해당 기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 이내이기만 하면, 매주 52시간을 지킬 필요 없이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정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가령 기간을 한 달로 잡으면 2주는 주당 80시간씩, 나머지 2주는 주당 24시간씩만 일해도 된다. 현재 연구직은 최대 3개월, 일반 사무직은 최대 1개월 동안 허용하고 있는데, 윤 당선인은 이를 1년으로 늘려 현장에서 보다 유연하게 근무 일정을 정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IT업계 사측에선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제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들의 게임 출시 지연이 잇따랐다. 그사이, 세계 시장에서 신작들을 대거 출시한 중국에게 규모의 경쟁에서 밀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IT업계 사측 관계자는 "해외 업체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기 위해선 프로젝트 마감과 일정, 고객응대 등을 위해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불과 5년 전 과로사"...크런치모드 부활할까 우려하는 직장인들
이에 반해 IT업계 근로자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프로젝트 마감 직전, 잦은 야근 등에 따른 과로로 사망한 5년 전의 게임업계 근로자 사망 사고가 악몽으로 자리하고 있어서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주 52시간 도입 전만 해도 사무실 불이 24시간 계속해서 켜져 있으면서 '구로의 등대', '판교의 등대'라는 오명까지 썼다"며 "유연화를 핑계로 직원을 갈아넣는 문화가 다시 올까 두렵다"고 염려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이미 주 52시간 제도가 정착된 가운데 예전처럼 후진적인 근무 환경이 들어서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IT업계 개발자 몸값도 상승한 가운데 과거처럼 무리한 야근을 강제하긴 힘들 것이란 시각에서다. 전자업체에서 근무하는 서비스 개발자 C씨는 "부장들은 사무실에 간이 침대를 놓고 주 100시간 설계했다는 것을 무용담처럼 얘기한다"며 "근무 환경이 과거로 돌아갈 경우 심각하게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노조가 없는 소규모 기업이나 비핵심 직군 종사자의 경우 회사가 정한 일방적 근무일정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는 제기된다.
"업무와 휴식 명확히 구분...실태조사 후 시스템 마련해야"
이에 전문가들은 근무 제도 개편에 앞서 구체적인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점 도출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손이 모자랄 때는 집중해서 근무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과감하게 휴식권을 제공해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 정착이 필요하단 진단에서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택적 근로제, 탄력근로제, 포괄임금제 등이 모두 맞물려 있다 보니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특히 회사나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의 주장으로 정책을 세우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은 뒤 노사합의 하에 자율적으로 근무 형태를 정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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