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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침공 불똥… 러, '아방가르드전 작품 조기 환수하라' 일방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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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침공 불똥… 러, '아방가르드전 작품 조기 환수하라' 일방 요구

입력
2022.03.17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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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 중인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을 찾은 어린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 중인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을 찾은 어린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한지은 인턴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야기한 불똥이 문화예술계로 튀고 있다. 러시아가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문화재의 반환 조치를 내리면서다. 러시아는 국내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시에 대해서도 작품을 조기 반환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관계자는 15일 한국일보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4월 17일까지 예정된 해당 전시를 같은 달 3일 종료하고, 작품을 조기 반환할 것을 일방 통보했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은 한국일보와 코리아타임스 주최로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을 중심으로 니즈니 노브고로드 국립미술관, 크라스노야르스크 수리코프 미술관, 연해주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49명의 작품 75점이 전시됐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달 말 '어려운 정국(The difficult political situation)'이란 이유를 들어 해외 전시회에 대여한 미술품을 조기 반환할 것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은 전시장 보안을 강화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전시작의 제때 반환을 보증할 것을 이달 초 한국일보에 요청했다. 그러던 중 돌연 전시품의 조기 반환을 알려온 것이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측은 이메일에서 "우리는 러시아 문화부의 명령을 준수해야 한다"며 "작품 포장과 배송 등 일정을 고려할 때 전시는 4월 3일까지 열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러시아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미술관 2곳에도 자국 미술품의 조기 반환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각각 23점과 2점을 러시아 미술관으로부터 빌린 갈레리에 디탈리아 미술관과 팔라조 레알레 미술관은 당초 6월 초까지 전시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 같은 조치는 서구권의 금융 제재와 무역 중단 등 잇따른 봉쇄 조치에 따른 러시아 측 대응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 중이라도 문화교류는 계속돼야 한다는 게 문화예술계의 목소리다. 한국일보도 전시는 예정대로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이유도 없는 러시아 측 일방 주장을 따를 수 없으니 계약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예정보다 2주 일찍 전시가 막을 내릴 때 입을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추상 거장 칸딘스키와 말레비치를 비롯해 그동안 국내에선 접하기 어려웠던 러시아의 국보급 작품이 오는 것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들 예술가들이 과거 소련으로부터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혀 탄압받은 역사가 최근 재조명되기도 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20세기 초 전쟁과 혁명의 시기를 살면서 러시아 혁명에 동조한 전위적 예술가 집단이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은 당과 혁명을 찬양하는 예술만을 필요로 했다. 말레비치는 대표작 '절대주의' 등이 당국에 몰수되고, 간첩 혐의로 실형을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의 말레비치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또 한번 수난을 겪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시의 예술감독인 김영호 중앙대 교수는 "예술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평화를 지향하는 활동"이라며 "인류 보편적 가치에 엇나가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개혁에 나서는 게 예술가에게 주어진 책무인 만큼 전시를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말레비치의 비극이 또다시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말이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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