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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두려움의 공간

입력
2022.03.15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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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랑
박미랑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 택시 강도살인 미제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나는 당시 무작정 개인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들에게 과거 겪었던, 혹은 들었던 택시 강도 사건에 대하여 물었다. 택시에서 발생하는 강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은 택시 기사들이 두려워하는 손님 유형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유형은 명확했다. 젊은 남자 2, 3명이 밤늦게 택시를 잡거나, 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먼 길을 가자고 하면 섬뜩하다는 것이다. 강도일 수도 있고, 혹은 밤늦게 먼 길을 태워다 주고도 택시비를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택시 강도 사건은 요즘 거의 사라졌다. 차량마다 블랙박스를 설치했고, 택시비를 현금이 아닌 카드로 지불하는 세상에서는 택시기사가 현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강도 사건도 줄어든 것이다.

택시 기사 대상의 강도 사건은 감소했지만, 택시는 여전히 많은 사건 사고의 공간이다. 전 법무부 차관도 그러하였듯이, 택시 승객이 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과거 금요일 밤부터 주말까지 지구대에 있어 보면, 택시요금 시비로 주취자와 함께 들어오거나 먹튀 손님을 데리고 오는 택시 기사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폭행이나 택시요금 시비는 과거 강도 사건에 비하면 경미한 범죄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기사들에겐 여전히 택시가 상당히 안전하지 않은 업무 공간이며 그들의 노동시간이 범죄로부터 취약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택시 기사만이 안전을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택시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다른 이들도 있다. 며칠 전 포항역에서 어두운 밤 홀로 택시를 탄 20대 여자 승객이 운행 중인 택시에서 뛰어내리는 사건이 있었다. 본인이 예상했던 목적지와 다른 곳을 향하는 택시 안에서 두려움을 느껴 했던 행동이다. 다른 길로 가는 택시 안에서 여자 승객은 기사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의제기를 하였지만, 쌩쌩 달리던 기사는 승객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여성은 그 몇 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친구와 나눈 문자 대화에는 "무섭다"는 표현이 적혀 있다. 그녀는 당시 본인이 어디 외딴곳으로 끌려가 강력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로 차에서 뛰어내리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뒤따라 달려오던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왜 큰 목소리로 기사에게 다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큰 공포 앞에서 침착하게 매우 합리적인 사고에 기반하여 최고의 전략을 구사해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택시 안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두려움이라고 해서 남들이 겪는 두려움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많은 여성들은 택시 안에서 기사로부터 성희롱과 추행을 당했고, 때로는 성차별적 훈계를 들어 왔다. 이런 일은 택시를 타본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흔하고도 빈번한 일이었기에, 늦은 밤 혼자 택시를 탈 경우 이 불편함과 불안을 그냥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늘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해서 그냥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로 여길 순 없다.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안전 취약사항이다. 그녀가 두려우면 나도 두렵고, 우리 가족도 두려운 것이다.

택시에서 뛰어내린 그녀의 비합리성과 소심함을 탓하지 마라. 그녀를 탓하기 이전에 우리는 택시가 누군가에겐 두려움의 노동 공간일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고, 택시 안에서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안심할 수 없는 누군가의 두려움에 먼저 공감해야 한다. 사람들은 매일 범죄 통계를 체크하면서 그날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의 수준을 정하지 않는다. 일상적이고 직관적인 생활 속 범죄의 두려움을 낮추려는 노력이 치안 정책의 기본이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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