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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 악몽 재연? 48시간 내 전력망 복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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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 악몽 재연? 48시간 내 전력망 복구해야

입력
2022.03.09 20:46
수정
2022.03.09 23:30
20면
0 0

"방사능, 구름 타고 유럽 전역 퍼질 수도"
우크라, 러에 전력망 복구 위한 휴전 요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구 소련 미사일방어 조기경보 레이더망 시설 앞에 방사능 경고 표지가 놓여 있다. 체르노빌=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구 소련 미사일방어 조기경보 레이더망 시설 앞에 방사능 경고 표지가 놓여 있다. 체르노빌=AP 연합뉴스

전 세계가 다시 방사능 공포에 휩싸였다. 역사상 최악의 원전 참사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에서 또다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이곳에 전력이 끊겼고, 임시 발전기로 버티고 있지만 예비 전력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겨우 48시간, 이틀뿐이다. 하루 빨리 전력이 복구되지 않으면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에 유출될 수 있어 1986년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체르노빌의 악몽’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원자력규제감독청(SNRI)은 페이스북에 “오전 11시 22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전력망이 차단됐다”고 밝혔다. 원전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냉각시킬 전력이 끊겼다는 얘기다. 체르노빌 원전은 1986년 폭발 사고 이후 전력 생산 기능을 상실했지만, 지금까지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고 있어 수백 년간 냉각시켜야 한다.

당장 디젤 발전기가 작동, 예비 전력이 공급되면서 방사능 유출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48시간뿐이다. 이 시간 안에 전력망을 수리하지 못할 경우 핵 물질을 냉각하는 시스템이 멈추면서 방사성 물질이 공기 중으로 유출돼 비산할 수 있다. 국영 원자력공사인 에네르고아톰은 “방사능 구름이 바람을 타고 우크라이나는 물론, 벨라루스, 러시아, 유럽 다른 국가로 퍼질 수 있다”며 “상황이 계속되면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현재 체르노빌 원전이 러시아군의 손에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군은 개전(開戰) 초기인 지난달 25일 체르노빌 원전 통제권을 빼앗고 직원 210명을 억류했다. 당시에도 방사능 유출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러시아 측은 “잘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력이 끊기면서 핵 공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계속되는 전투로 전력망을 복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은 우려를 더 키운다. 러시아군을 설득하고 잠시라도 교전을 멈춰야만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일시 휴전을 요구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푸틴의 야만적인 전쟁이 유럽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며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긴급히 전투를 멈추고 전력 공급을 복구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측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답변이 없다.

전날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체르노빌 원전 내 모니터링 장비의 통신이 끊겼다며 “체르노빌의 악화하는 상황에 대해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는 경고 성명을 냈다. 모니터링 장비는 방사성 물질이 제 위치에 잘 보관돼 있는지 확인한 후 IAEA로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전력망이 차단되고 통신이 끊기면서 체르노빌 원전 안전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IAEA는 트위터를 통해 “체르노빌 사용후핵연료 저장고의 열부하 및 냉각수 분량은 전기 공급 없이도 열을 효과적으로 식히기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군의 점령 이전 상황이다. 원전 직원들과 연락이 두절되면서 현재 원전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인질로 잡힌 원전 직원들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기술자와 안전요원들은 하루 한 끼 빵과 죽으로 연명하고 책상 위에서 2시간 쪽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일부터 러시아군 통제에 들어간 자포리자 원전 직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갈루셴코 우크라이나 에너지 장관은 이날 “러시아군이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할 가짜 선전물을 만들기 위해 원전 직원들을 고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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