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까지 달러표시 채권 이자 지급해야
고의 디폴트로 서방 국가에 맞불 가능성
1998년 이후 24년 만에 부도 선언할 수도
러시아 ‘국가부도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다. 서방의 고강도 경제 제재 속에 달러의 씨가 마르면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게 된 탓이다. 1차 고비는 첫 이자 상환일인 오는 16일(현지시간)이다. 러시아가 ‘마(魔)의 16일’을 무사히 넘기지 못할 경우 1998년 이후 24년 만에 두 번째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경우 중국 등 신흥 시장이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6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Ca’까지 내렸다. 총 21단계인 무디스의 등급 가운데 20번째다. 사실상 부도를 의미하는 ‘C’의 바로 윗단계이다. 사흘 만에 등급을 10단계나 끌어내렸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도 러시아 신용등급을 연일 낮추면서 러시아 채권은 이미 휴지 조각 수준으로 추락했다. 게다가 이들이 등급 추가 하향 가능성도 밝힌 터라 부도가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다.
글로벌 자산시장에서도 경고음이 잇따른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이날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들이 밝힌 러시아의 첫 위기는 16일이다. 이날까지 두 종류의 달러 표시 채권에 대해 약 1억700만 달러(1,315억 원)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계약상 루블로는 지급할 수 없다. 그러나 서방 국가가 일부 자산을 동결한 데다, 자금줄인 정유업계까지 제재를 가하면서 수중에 달러가 부족하다.
물론 16일까지 돈을 갚지 못한다고 바로 파산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일단 30일간 유예기간을 적용받는다. 실제 부도 여부는 다음달 15일쯤에야 결론 난다. 만일 이 기간 안에 러시아가 상환한다면 디폴트를 피할 수도 있다. 게다가 아예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있는 달러 외환 보유액은 120억 달러(약 14조7,000억 원) 수준이다. 손에 쥔 외화가 넉넉하진 않아도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오는 31일(3억9,500만 달러), 다음달 4일(20억 달러) 원금과 이자 상환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달러 잔고가 바닥을 보이면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할 수도 있다.
서방에 대한 보복 카드로 상황을 악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국채 상환을 자진 포기하는 이른바 ‘고의 디폴트’로 서방국 대출 기관에 손실을 입힌다는 의미다. 러시아가 디폴트에 빠지면 이들로부터 받을 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국가나 금융사는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당장 러시아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 비거주자에 대한 국채 상환은 서방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면 국채 상환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이다. 때문에 오는 16일 러시아의 행보가 향후 상환 의지를 가늠할 시험대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단 외신들은 러시아의 ‘두 번째 디폴트 선언’은 이제 예고된 수순이라고 본다. 러시아는 1998년 루블화 국채의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을 선언하며 사상 최초로 부도를 맞았다. 문제는 러시아 내부만의 파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 석좌교수는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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