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사흘 앞둔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전투표 부실 관리가 대선 정국을 집어삼켰다. '중립적이고 무결한 민주 선거 관리'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독립된 헌법기관의 지위를 부여받은 선관위가 ①안일한 상황 인식 ②준비 부족 ③구멍난 위기 관리 능력을 드러냈다. '민주주의 꽃'인 선거의 절차적 정당성을 선관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선 이후가 더 문제다. 근소한 표차로 승부가 가려져 패배한 쪽에서 '부실선거'를 '부정선거' 의혹으로 키우려 한다면, 정국이 소용돌이로 빨려들어 갈 것이다. 선관위가 자초한 위기다.
투표함 대신 바구니·종이상자·비닐팩 준비한 선관위
이번 대선 선거인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격리자는 사전투표 이튿날인 5일 오후 5~6시 사이에 투표소별로 마련된 임시 기표소에서 투표했다. 선거구별로 투표함을 한 개만 둘 수 있게 한 공직선거관리법에 따라, 이들을 위한 투표함을 별도로 설치할 수 없었다. 이에 이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는 선거사무원이 임시보관함에 담아 투표함으로 옮겼다.
문제는 선관위가 임시보관함의 규격 등 통일된 매뉴얼을 정하지 않아 비닐 봉지, 플라스틱 바구니, 택배 상자, 쇼핑백 등이 무작위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투표소별로 임시 기표소가 차려진 장소도 제각각이었고, 특정 대선후보에게 기표된 용지가 새 용지처럼 배부된 사례도 있었다. 확진·격리자가 몰려들어 혼선을 빚는 장면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총체적 부실이었다.
"준비했다" 자신하더니… 안일한 상황 인식 도마
이번 사태는 선관위의 안일한 상황 인식에서 비롯됐다. 지난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사전투표에 나서는 확진·격리자도 본투표(9일)처럼 일반 투표자의 투표가 끝난 6시 이후 90분간 투표하게 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별도의 시간을 둘 필요가 없다"며 반대했다. 사전투표율이 치솟을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은 결과다.
선관위는 격리·확진자는 기표 용지를 투표함에 직접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제대로 알리지 않아 선거인들의 불안과 반발을 키웠다. 선관위는 "2020년 총선과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도 코로나19 격리자에 대해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고 해명했지만,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확진·격리자가 급증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선관위는 지난달 9일 국회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확진자 투표 대책에 대해 "코로나19가 최악으로 갈 것에 대비해 준비를 해왔고 예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다. 세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한 바 있다.
선거 절차적 정당성 상처… 여야 일제히 비판
선관위는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설치된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중앙선관위원장이 5부 요인의 지위를 보장받는 것은 선거 관리를 엄중하게 하라는 의미다. 선관위는 그러나 책임을 방기했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 전 상임위원 임기 연장 논란 등으로 편파 논란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선관위 선거 부실 관리라는 또 하나의 오점을 남겼다.
"부정선거는 아니다" 고개 숙인 선관위
선관위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6일 "불편을 드려 매우 안타깝고 송구하다"면서도 "모든 과정에 정당 추천 참관을 보장하여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7일 오전에 긴급위원회를 소집해 본투표 관리 대책을 밝힐 계획이다. 방역당국과 논의해 확진·격리자 투표 방식을 보완하고, 본투표일엔 확진자용 임시기표소를 없앨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선관위가 그 경위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 충분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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