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금융·기술·교역 등 광범위 제재
세계 경제 파급력... 정작 피해는 누가?
러시아 경제 타격 속 푸틴 오래 버틸 가능성
IMF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 우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측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향해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고립시키는 '초고강도'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 효과가 어디까지 미치고 러시아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제재 자체만으로는 러시아를 굴복시키기 힘들다고 평가한다. 러시아 경제가 고립됐지만, 장기화할수록 정작 러시아는 버티는 반면 빈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 다른 국가들의 피해가 누적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푸틴 "제재조치 선전포고에 가깝다"
5일(현지시간)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서방 세계는 금융과 기술, 교역, 물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러시아 경제를 압박 중이다. 세계 금융기관 거래 메시지를 교환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 은행을 배제했고, 해외 자산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수출도 제한했다.
현재 러시아 국적 항공사의 항공기는 미국과 유럽의 영공에 진입할 수 없다. 반대로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항공사 역시 시베리아를 우회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의 자산도 제재 대상이다.
이는 러시아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이다. 러시아는 에너지 자원을 수출하고 서방 선진국의 기술을 투자받아 경제를 성장시켜 온 나라다. 국제 교역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경제활동은 축소되고 국민의 생활도 고통받게 된다.
푸틴 대통령도 제재의 고통을 인정했다. 5일 국영방송을 통해 공개된 러시아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승무원과의 간담회에서 서방의 제재가 "거의 선전포고에 가깝다"며 "다행히 거기(선전포고)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방에 대한 보복 제재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날 국영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정부에 '러시아 국가 및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제재 조치를 취하는 국가 목록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러시아에 제재 버틸 장기적 여력이 있는 이유
러시아가 당장 제재에 맞설 탈출구는 마땅치 않다.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할 것에 대비해 외환보유고 일부를 달러에서 금과 중국 위안으로 바꿨지만, 위안화가 달러만큼 활발히 거래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조차 당장은 서방의 제재 분위기에 정면대결할 태세가 아니다. 중국 최대 금융사인 공상은행과 중국은행 등이 제재에 반응해 해외업장에서 러시아 자산 거래를 정지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러시아가 제재를 버텨 나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경제제재 전문가인 니컬러스 멀더 코넬대 교수는 4일 이코노미스트 기고에서 "단기 충격을 견뎌내고 나면 러시아가 장기 저성장 혹은 역성장을 감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러시아가 교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이긴 하지만 배후시장 규모도 크고 재정 여력도 있으며 수출할 방법도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경제 영역의 단기 고통이 러시아 내부의 반전 여론에 불을 지펴 푸틴 정권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비관적으로 본다. 올가 치즈 토론토대 정치학과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제재가 러시아의 '파이' 크기를 줄일 수 있지만, 그 파이는 푸틴이 자국내 자산을 분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크다"고 규정했다. 다만 그는 제재 효과로 "군비 충당이 어려워지는 등 러시아의 전쟁 능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재 강화보다 우크라이나 지원이 우선"
제재가 길어질수록 서방이나 다른 국가들의 곤란도 함께 커진다. 러시아는 2021년 기준 세계 11위 규모의 경제강국이자 전쟁 전까지만 해도 국제 교역망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사실상 루블화 경제권인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러시아·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로 묶이며 경제 부문에서 협력해 온 브라질·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러시아와의 연결고리를 쉽게 끊지 못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서방 중심의 반 러시아 연대에 거리를 두고 있다.
서방의 제재가 석탄·석유·농작물 등 '필수 교역품'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기업과 금융사들은 이를 사실상 '선제적 지침'으로 받아들이면서 예비적 수요가 물가를 급속히 끌어올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석유와 밀 등 필수자원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해 온 빈국들은 높은 물가로 고통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공동 성명을 통해 "전쟁과 제재는 금융 시장의 혼란을 유발하고 인플레이션 등 상당한 경제적 영향을 미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서방의 대러 제재로 인한 세계경제 영향과 관련, 러시아의 굴복을 기대하고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고통받고 있는 빈곤국에 더 많은 물적·재정적 지원을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제재가 중요한 도구이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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