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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反 인륜 만행’...민간인 폭격·대량살상무기 동원, 절박한 키예프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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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反 인륜 만행’...민간인 폭격·대량살상무기 동원, 절박한 키예프 사수

입력
2022.03.01 19:33
수정
2022.03.02 01:0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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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시설 없는 하르키프 주택가에 미사일 맹폭
인도주의 시설도 피격… 대량살상무기 사용 의혹
민간 공격으로 전술 변경 "공포 조성해 항복 유도"
국제형사재판소(ICC), 전쟁범죄 조사 착수
러시아 병력 증파 우려 "무기 보급망 사수가 관건"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 시립병원에 도착한 구급차에서 의료진이 러시아군의 주택가 폭격으로 다친 소녀를 옮기고 있다. 이 소녀는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끝내 숨졌다. 마리우폴=AP 뉴시스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 시립병원에 도착한 구급차에서 의료진이 러시아군의 주택가 폭격으로 다친 소녀를 옮기고 있다. 이 소녀는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끝내 숨졌다. 마리우폴=AP 뉴시스

“이것을 푸틴에게 똑똑히 보여주시오. 이 아이의 눈빛을, 울고 있는 의사들을.”

포탄에 쓰러진 여섯 살배기 소녀를 끝내 살리지 못한 의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했다. 부모는 망연자실한 채 흐느꼈다. 피로 물든 작은 바지에는 앙증맞은 유니콘 캐릭터가 새겨져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에 살고 있는 소녀는 엄마아빠 손을 잡고 잠시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러시아군의 폭격을 당했다.

수도 키예프 아동병원에선 암 투병 중인 어린 환자가 자그마한 손에 메모장을 들어 보였다. “Stop War(전쟁을 멈추라).” 치료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아이들은 피란도 가지 못하고 병원 지하실에 숨어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자상과 총상을 입어 이 병원으로 실려온 어린이만 네 명. 한 명은 위독한 상태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AP통신과 로이터통신이 전한 전쟁의 참상에 전 세계가 슬픔에 잠겼다.

민간인 공격 자행… 폭주하는 러시아군

러시아군은 점점 난폭해지고 있다. 아무 죄 없는 어린이와 민간인에까지 무차별 포화를 퍼부었다. 전쟁 엿새째인 1일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프는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주정부 청사가 위치한 중앙 광장에 미사일이 떨어져 최소 10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 건물 잔해에 매몰된 사람도 많아 희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날에도 미사일이 주택가를 덮쳐 사상자 44명이 발생했다. 도심 곳곳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는 목격담도 잇따랐다. 불발탄은 아파트 외벽을 뚫고 거실 안에 떨어졌고, 도로 한복판에도 박혔다. “군사시설만 타격한다”는 러시아 측 주장과 달리 140만 명이 거주하는 하르키프에는 군사시설이 없다. 러시아가 고의로 민간인을 노린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호르 테레호프 하르키프 시장은 “이것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규탄했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프가 1일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초토화됐다. 하르키프=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프가 1일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초토화됐다. 하르키프=로이터 연합뉴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키예프도 예외는 아니다. 이날 키예프 인근 산부인과 병원과 재향군인회관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키예프 중심가 정보보안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을 경고했다. 키예프 북쪽 수미주(州) 아크튀르카 군사기지에선 민간인을 포함해 70명이 몰살당했다.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 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크렘린궁이 군사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전술을 바꾼 듯하다”며 “그동안 유치원, 병원, 아파트 같은 민간 건물 폭격은 ‘우발적’인 경우가 많았으나, 점차 민간 인프라를 겨냥한 테러 활동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격 목표는 “공포를 조성해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다. 유엔은 사망자 102명을 포함해 민간인 사상자 수를 406명으로 집계했다.

지난달 28일 수도 키예프에 있는 아동병원에서 어린이 환자들이 '전쟁을 멈추라'는 문구가 적힌 메모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수도 키예프에 있는 아동병원에서 어린이 환자들이 '전쟁을 멈추라'는 문구가 적힌 메모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국제법으로 금지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전날 미 의회 보고를 마친 뒤 “러시아군이 제네바 협약에 금지돼 있는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진공폭탄은 강력한 초고온 폭발을 일으켜 인체 내부기관에 손상을 주는 비인도적 무기로, ‘방사능 없는 핵폭탄’이라 불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분석한 폭격 현장 영상물을 토대로 하르키프 공격에 ‘집속탄’도 사용됐다고 보도했다. 집속탄은 폭탄 안에 수백 개 소형 폭탄이 들어가 있어 대규모 인명 살상을 유발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인도주의 위기 경고등이 울리자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쟁범죄에 관한 조사에 착수했다.

러시아 총공세 예고… 군수 보급망 사수하라

그러나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고 군사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접경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 4분의 1이 아직 투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소식통은 “군사적ㆍ전술적 관점에서 러시아는 키예프를 점령할 인력과 화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에 가로막혀 진격 속도가 느려졌으나 그로 인한 좌절감 때문에 한층 가혹한 공격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CNN방송에 말했다.

미 의회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전황에 격분해 측근들을 혹독하게 질책했다는 전언도 나왔다. 푸틴 대통령이 폭주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미 러시아군 탱크와 수송차량이 키예프를 향해 밀려오고 있다. 위성사진으로 확인된 길이만 무려 64㎞에 달한다. 러시아는 2차 병력을 투입할 준비도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부 고위 관리는 “키예프에 참혹한 시가전이 임박했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서북부 지역에서 이동하는 러시아 지상군의 전투와 보급 차량 행렬을 지난달 28일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 맥사 테크놀로지스 제공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서북부 지역에서 이동하는 러시아 지상군의 전투와 보급 차량 행렬을 지난달 28일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 맥사 테크놀로지스 제공

키예프 사수는 그만큼 더 절박해졌다. 무기와 물자 보급로가 끊기면 우크라이나군은 물론 시민들도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과 미국 등이 지원하는 무기는 현재 폴란드 국경을 통해 반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가디언은 “영공을 통한 물자 공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방 무기 공급 경로를 얼마나 유지하는지가 우크라이나 방어에 중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중립국 핀란드까지 소총과 탄약, 대전차 무기, 군사 식량 등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인도도 구호물품을 선적했다.

우크라이나 예비군 지원자는 어느새 10만 명을 훌쩍 넘었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외국인 전투 자원병에게 비자를 면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에 ‘비행금지구역’ 설정도 요청했다. 비행금지구역에선 인도적 목적 외에는 비행이 금지돼, 러시아 전투기가 진입하면 곧바로 격추당하게 된다. 사실상 미군에 직접 개입을 요청한 셈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와의 직접 충돌이 될 수 있어 참여 계획이 없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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