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하루 만에 입대한 신혼부부
맨몸으로 탱크 막아서는 민간인
부상자 위해 헌혈·식료품 기부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시민 저항 이어져
"결사항전에 러군도 고전"
우크라이나 키예프 시의회 의원인 야라니 아리에바(21)는 스비아토슬라브 퍼신(24)과 24일(현지시간) 결혼식을 올린 직후 국토방위군에 입대했다. 이들은 오는 5월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결혼식을 앞당기기로 했다. 아리에바는 공습 경보가 울리는 와중에 결혼식을 올리며 "정말 무서웠다"면서도 "우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그 전에 함께하고 싶었다"고 미국 CNN 방송에 전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맞닥뜨린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온몸으로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속전속결로 체르노빌 원전, 동부 돈바스 지역, 남부 오데사 등을 장악한 러시아는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막혀 주요 도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군사 전문가들이 러시아의 침공 시 우크라이나 군대가 버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했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고 전했다.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가 선전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전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징집령이 발령되기 전부터 자발적으로 예비군이나 민병대에 속속 입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병대 규모는 현재 약 13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화, 군복도 없이 테니스화 등 운동화를 신거나 트레이닝복을 입고 소총을 든 20~50대 시민들이 대부분이다. 예비군에 합류하진 않더라도 부상자를 위해 헌혈을 하거나 식료품을 기부하는 등의 자원 활동도 이뤄지고 있다.
이호르 자로바(58) 키예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키예프 징집소에서 NYT에 "모든 가족들이 걱정하긴 했지만, 아무도 나한테 자원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며 "모두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같은 곳에서 소총을 배급받고 있던 올레나 소콜란씨도 "폭발 소리를 들었을 때 난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다"며 "나는 건강한 성인 여성이고, 이게 내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화염병 같은 무기를 직접 제작해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러시아군을 상대하는 시민들도 러시아군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방송에선 화염병 제조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지하 방공호에서 화염병을 제조하고 있다. 실제 지나가는 러시아군 트럭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영상에 잡히기도 했다. 시민들은 또 러시아군이 지나는 주요 길목엔 혼선을 주기 위해 도로 표지판을 쓰러뜨리거나 제거하기도 했다.
급기야 비무장 상태의 시민들이 러시아군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모습도 포착됐다. 전날 우크라이나 북부 도시 바흐마치에선 지역 주민들이 몸으로 탱크의 진로를 방해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영상에서 한 주민은 움직이는 탱크 앞에 서서 탱크를 밀다 소용이 없자 몸체 위로 올라가 매달렸다. 그럼에도 탱크가 멈추지 않자 아래로 내려와 도로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시민의 안전을 염려해 인도로 끌어올리자, 또 다른 주민이 탱크 앞을 가로막았다.
앞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목숨을 바쳐 러시아군의 진입을 늦춘 사실도 알려지면서 주위를 숙연케 했다. 우크라이나군에 따르면 해병대 공병 비탈리 샤쿤 볼로디미로비치는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본토를 연결하는 남부 헤르손주(州) 헤니체스크 다리 폭파 작업에 자원했다. 그는 다리에 지뢰 설치를 완료했지만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올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폭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볼로디미로비치의 희생 덕분에 러시아군의 진격을 크게 늦출 수 있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기대와 달리 침공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찬성 여론도 높아졌다. 우크라이나 여론조사 기관 레이팅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나토 가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지난 12월 55%였던 찬성률은 러시아의 침략 위기가 고조되면서 2월엔 62%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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