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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각서’가 던지는 근본적 물음… 北 핵무장 빌미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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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각서’가 던지는 근본적 물음… 北 핵무장 빌미 되나

입력
2022.02.26 04:3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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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우크라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국가 안전보장·경제지원 대가로 핵 포기
러 "우크라 나토 가입 추진·핵무장" 주장
북한·이란 비핵화 조치에도 불똥

25일 러시아군의 포격에 붕괴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외곽의 한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한 남성이 촬영하고 있다. 키예프=AFP 연합뉴스

25일 러시아군의 포격에 붕괴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외곽의 한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한 남성이 촬영하고 있다. 키예프=AFP 연합뉴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러시아와 미국 등으로부터 국가 주권을 보장받고 경제 지원을 받기로 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1994년) 폐기를 의미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북한과 이란 등이 우크라이나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핵무장을 정당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한 국가의 운명은 특정 강대국에 기댈 게 못된다는 이유를 들어, 기존 국제규범이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흔들 수 있다는 얘기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는 하루아침에 세계 3위 규모의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소련의 주요 군사 지역이었던 우크라이나에 1,700여 개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0여 기, 전략핵폭격기 40대가 고스란히 남았다. 독립 이후 정치·경제 안정이 시급했던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의 핵 포기 압박에 따라 각서에 서명하고 1996년까지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 폐기했다.

하지만 지금 지켜보는 핵 포기의 대가는 혹독하다. 국제사회 조약이나 협정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는 미국과 러시아가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에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하면서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편입시키려 시도해왔다.

안보 위협을 느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 침공의 빌미를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마저 벌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1일 TV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은 러시아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의 핵무장 가능성을 제기하며 침공의 명분으로 활용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독자적 핵무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라며 “그들은 소련 시절에서 비롯된 광범위한 핵 능력과 선진적 핵산업, 교육기관 등 (핵무장을) 단행할 모든 걸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핵무장 가능성이 없는 우크라이나에 침공 책임을 미루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앞서 “미국이 러시아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빼앗으려고 공조하지 않았더라면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뼈아픈 후회를 하기도 했다.


북한이 지난달 28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체계 갱신을 위해 지상 대 지상(지대지) 전술유도탄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28일 장거리 순항미사일 체계 갱신을 위해 지상 대 지상(지대지) 전술유도탄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이란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비핵화 대가로 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북한과 이란이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강경 입장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 국가의 운명을 보게 됐다”며 “여러 제재에도 핵을 보유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할 것이고, 미국은 북한을 설득할 동력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러시아의 침공을 막지 못해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무기력함을 드러냈다”며 “북한이 혼란의 틈을 이용해 핵 보유를 정당화하면서 미국을 흔드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핵을 가진 거대국가가 침공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에 대한 집착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북한으로선 어떻게든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통해 제재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강지원 기자
김민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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