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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키예프 진입해 정부 관료 다 죽인다더라"...시민들 '패닉' 속 항전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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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키예프 진입해 정부 관료 다 죽인다더라"...시민들 '패닉' 속 항전 의지

입력
2022.02.25 18:00
수정
2022.02.25 18:40
2면
0 0

[우크라 키예프 시민 4명 한국일보 인터뷰]
"이 전쟁 방치하면, 다른 나라도 겪는다"
나라 전체가 전쟁 공포 빠졌지만
"우크라이나 군대와 국민 믿는다"
한국 등 전 세계 러시아 제재 동참 요구


“곧 러시아군이 수도에 있는 정부기관을 습격해 고위 관료들을 살해할 것이라는 소식까지 들린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내의 한 공원에서 민간인들이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해 무기 다루는 법 등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역 돈바스에서 최근 긴장이 고조돼 이날 종료할 예정이던 벨라루스와의 연합 군사훈련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키예프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내의 한 공원에서 민간인들이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해 무기 다루는 법 등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역 돈바스에서 최근 긴장이 고조돼 이날 종료할 예정이던 벨라루스와의 연합 군사훈련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키예프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영화 비평가로 활동하는 알렉산드라 포보로즈닉(28)은 24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군의 침공으로 공포가 휩쓸고 있는 현지 상황을 한국일보에 전해왔다. 키예프 인근 호스토멜 군 공항이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 온 직후였다. 그는 “키예프 분위기가 너무나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지인과 친인척들의 안부를 파악하고 싶지만 통신 장애로 막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그는 토로했다.

한국일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인 지난 22일부터 포보로즈닉을 포함해 이리나(24), 발레리아 바실렌코(24), 올레나 디엠(21) 등 4명의 키예프 시민과 인터뷰를 추진했다.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지시한 직후다. 인터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창(DM)을 통해 22~25일 사이 이뤄졌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거주하는 영화 비평가 알렉산드라 포보로즈닉(28)과 24일 나눈 대화 내용. '전쟁이 확대되면 이민 등을 계획하고 있냐'는 질문에 포보로즈닉은 "최악의 상황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친구들과 친척이 사는 고향 우크라이나에 남을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거주하는 영화 비평가 알렉산드라 포보로즈닉(28)과 24일 나눈 대화 내용. '전쟁이 확대되면 이민 등을 계획하고 있냐'는 질문에 포보로즈닉은 "최악의 상황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친구들과 친척이 사는 고향 우크라이나에 남을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이들에 따르면 러시아가 전면 침공을 강행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역은 패닉(공황)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트위터 등 SNS에는 동부 하르키프, 남부 오데사 등 주요 도시들이 미사일 공격을 받는 모습을 담은 영상과 피란 가려는 자동차들로 막힌 키예프 시내 사진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24일 오전 5시 전후 굉음이 울리고 뒤이어 키예프에 공습 경보가 발령되면서 시민들은 오전부터 지하철역과 건물 지하실 등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바실렌코는 25일 새벽 "잠드는 것도 무서워서 계속 울고 있다"며 "이 상황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길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코앞까지 들이닥친 러시아의 위협에 생존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공습경보가 울리자 주민들이 건물 지하 대피소에 모여 있다. 키예프=AP/뉴시스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공습경보가 울리자 주민들이 건물 지하 대피소에 모여 있다. 키예프=AP/뉴시스

전쟁이 일어나면서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빠져나가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떠날 계획은 없다고 단언했다. 불가피하게 피란을 가야 한다면 서쪽 지역으로 이동할 뿐, 이민 역시 생각해본 적 없다고 못 박았다. 키예프에서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디엠은 "우크라이나는 강한 나라고 우리나라 군대와 시민들의 힘을 믿는다"며 "힘들어도 우리는 계속 일상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전쟁에 맞설 의지를 다졌다. 몇몇은 직접 참전할 계획을 밝혔다. 이리나는 "주변 친구들은 이미 지역 군사 훈련을 신청해놨다"며 "나는 응급 처치 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포보로즈닉도 본인을 포함해 많은 주변인이 헌혈과 기부금 모금, 외국인 기자들을 위한 통역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며 "불가피하다면 응급 처치 교육과 군사 훈련을 받아 직접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도움도 호소했다. 러시아군을 몰아낼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경제 제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실렌코는 "우리나라의 일은 우리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국가들의 지지 덕분에 완전히 궁지에 몰리지는 않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미 구체적인 경제 제재를 선포한 미국과 유럽연합(EU)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적극적인 동참도 호소했다. 이리나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최대한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가 전쟁을 접을 때까지 제재를 유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침공은 단순 군사 공격을 넘어 우크라이나 자체를 부정하고 흡수하려는 시도라고 이들은 정의했다. 이리나는 지난 21일 "우크라이나는 항상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말한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언급하며 "우리는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면서 민주주의 국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디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단순히 먼 나라의 정치 문제로만 생각지 말아줬으면 한다는 부탁을 남겼다. 그는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당하고 있지만, 이 위기를 방치하면 다음엔 다른 국가들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예전과 같은 평화다. 디엠은 "21세기 유럽에서 죄 없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어나가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게 된다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로웠던 지난해 가을 키예프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얼마 지나지 않은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희망이 담긴 듯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거주하는 대학생 올레나 디엠(21)씨가 지난해 9월 19일 키예프에서 촬영한 사진. 올레나씨는 이때까진 평화로웠다고 회상했다. 올레나 디엠 제공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거주하는 대학생 올레나 디엠(21)씨가 지난해 9월 19일 키예프에서 촬영한 사진. 올레나씨는 이때까진 평화로웠다고 회상했다. 올레나 디엠 제공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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