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빗발치는 포성 속에서도 놀랍도록 침착했다. 러시아가 2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 여러 도시를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했지만, 공황에 빠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신속히 피란 짐을 꾸렸고, 각 시당국은 긴급 대피를 도왔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무장을 하고 항전에 나설 채비를 했다.
미국 CNN방송과 영국 BBC방송, 가디언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전(開戰)을 선언하자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영공도 즉시 폐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방과 안보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며 “우리는 강하고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동요하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미사일 공격을 받은 수도 키예프는 정적에 휩싸였다. 폴란드와 접한 북서부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이른 새벽부터 피란 차량으로 정체를 빚기도 했다. 지하철도 짐을 챙겨 나온 주민들로 가득 찼다. CNN은 “지하철 역이 대피소가 됐다”고 전했다. 몇몇 주민들이 광장에 모여 기도를 하는 모습도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러나 대다수 주민들은 집에 머물며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교문은 닫혔지만 수업은 온라인으로 정상 진행됐다. 시당국은 주민들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피란 가방을 준비해 두라”고 공지했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인 하르키프에서도 온종일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다. 학교와 공공기관에는 즉시 휴교ㆍ휴업령이 내려졌지만, 대중교통은 평소처럼 운행됐다. CNN 취재진은 “여러 도시에서 공습 경보가 울렸지만 현지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다”고 전했다.
다만 러시아와 가까운 지역은 긴장이 고조됐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루간스크주(州) 당국은 우크라이나 정부 통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철수령을 내렸다. 러시아군과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전선을 넘어 쳐들어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주정부는 “피란 기간 침착함을 유지하고 당국과 경찰, 긴급구조대의 지시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면전에도 대비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원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무기를 지급할 것”이라며 “러시아에 맞서 나라를 지킬 준비가 된 시민들은 나와 달라”고 말했다. 앞서 18~60세를 대상으로 예비군도 소집했고, 민간인이 총기를 소지하고 방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도 통과시켰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이 수개월간 지속되면서 이미 무장 준비를 마친 주민들도 많다. 우크라이나 경찰에 따르면 2월 한 달간 총기 10만 개가 새로 등록됐다. 키예프에만 총기 소지자가 7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 팔리고 얼마 남지 않은 탄약과 소총도 무기 사용이 합법화되자마자 품절됐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분리주의 반군이 돈바스 지역을 점령한 이후 8년째 저강도 내전 상태였다. 전투 경험을 한 사람은 무려 40만 명에 가깝다. 학교에선 총기 사용 법도 가르친다. 각 지역 방위 부대에는 훈련 지원자들로 넘쳐난다.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가 총기를 다룰 줄 안다는 뜻이다. 안드리 자고로드니우크 전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총을 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제사회에 단결과 연대를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전 직전 발표한 영상 담화에서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소환하며 미국과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 등과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체결, 당시 세계 3위 규모였던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영토 보존과 주권을 보장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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