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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생이별? 돈바스 주민 탈출 영상에 드러난 러시아의 '위장 깃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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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생이별? 돈바스 주민 탈출 영상에 드러난 러시아의 '위장 깃발' 계획

입력
2022.02.21 19: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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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DPR, "주민 러시아로 대피" 주장
데이터 분석 결과 영상은 이틀 전 찍혀
푸틴 "학살" 언급→교전→영상공개
NYT "근거 없는 학살 발언, 침략의 서막"

친 러시아 반군이 통제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19일 버스에 올라 피란길에 나선 딸과 차창 밖 아버지가 서로 손을 흔들며 이별하고 있다. 도네츠크=로이터 연합뉴스

친 러시아 반군이 통제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19일 버스에 올라 피란길에 나선 딸과 차창 밖 아버지가 서로 손을 흔들며 이별하고 있다. 도네츠크=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최근 친(親)러시아 반군이 공개한 돈바스 지역 주민들의 대대적인 탈출 영상이 포격 전 미리 찍어둔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러시아가 침공 구실을 만들기 위해 치밀하게 짜놓은 ‘위장 깃발 작전’ 중 하나라는 얘기다.

20일(현지시간) ABC방송 등을 종합하면 이틀 전 공개된 친러 반군의 영상이 러시아의 ‘자작극설(說)’에 불을 붙이고 있다. 돈바스 지역 분리주의 반군 조직 ‘도네츠크공화국(DPR)’ 수장 데니스 푸실린은 18일 텔레그램 계정에 영상을 하나 올렸다. 여기에는 역내 긴장이 고조되면서 여성과 아이, 고령자들을 우선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州)로 대피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위협적 상황부터 고향을 등지는 주민들의 서글픈 모습이 담긴 이 영상은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공격으로 돈바스 지역 전쟁 위기가 고조된 상징적 장면으로 떠올랐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 러시아 매체는 곧바로 해당 지역 주민들이 버스에 탄 채 가족과 생이별하는 모습, 육로 대피를 위해 주유소에 길게 줄 서는 사진을 속속 공개하며 공포에 불을 댕겼다. DPR 주장대로라면 이번 주민 대피 결정은 친러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 교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내려져야 한다. 스푸트니크통신 등 러시아 매체가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돈바스 지역을 포격했다”고 첫 보도한 건 17일 새벽. 교전 이후 전쟁으로 격화할 것을 우려한 주민들이 고향을 떠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숨겨진 정보’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리켰다. 외신들이 해당 비디오의 메타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영상은 DPR 측의 공개 이틀 전인 16일 촬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데이터는 작성자와 저장 시간ㆍ장소 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른바 ‘데이터의 데이터’를 말한다. 미국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 디지털포렌식연구원의 로만 오사드추크 연구원은 “이런 정보는 SNS 플랫폼에 올린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며 “영상은 16일 제작됐다”고 단언했다. 결국 교전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조직적으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는 얘기다. 친러 반군, 더 나아가 러시아가 고의적으로 불안 상황을 만들기 위해 ‘사전 정지 작업’을 했다는 것 외에는 다른 해석이 나오기 어려운 행보다.

영상 제작 전후 러시아 측 움직임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을 만들려 일사분란 하게 움직였다는 의심에 불을 붙인다. 비디오 녹화 하루 전(15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제노사이드(대학살)가 일어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침공 계획이 없다”며 서방 국가의 의심에 선을 긋던 그의 갑작스러운 학살 언급에 국제사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영상 공개 이틀 뒤인 20일에는 러시아가 돈바스 상황 악화를 이유로 벨라루스와의 연합 훈련을 연장하기로 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이 판을 깔고 △돈바스 지역에서 교전을 벌인 뒤 △곧바로 사전 제작한 피란 영상을 공개하며 ‘우크라이나 책임론’을 부각시켜 러시아가 개입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의 근거 없는 학살 주장은 침략의 서막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쉽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AP통신은 “사전 제작 영상은 러시아와 친러 반군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 구실을 만드는 거짓 정보를 흘린다는 미국 정부의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해준다”고 전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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