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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가정 폭력... '밤을 넘는 아이들'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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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가정 폭력... '밤을 넘는 아이들'을 직시하라

입력
2022.02.04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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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미술관서 3월 13일까지

민진영의 설치 작품인 'Between roof and roof'. 서울대미술관 제공

민진영의 설치 작품인 'Between roof and roof'. 서울대미술관 제공

"자신의 부모가 가하는 폭력에서 첫 가르침을 받지 않은 어린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사자왕 형제의 모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어린이 책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세계 최초로 스웨덴에서 아동 체벌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1978년 그의 기념비적 연설문 중 일부다. 무려 40여 년 전 이 말을, 우리는 서울대미술관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다. 전시장 초입에 붙은 그의 메시지는 자꾸만 우리 발목을 잡아챈다. 슬프게도, 여전히 유효한 때문이다.

서울대미술관은 다음 달 13일까지 '밤을 넘는 아이들' 전시를 연다. 회화, 사진, 설치,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 10명이 가정에서 아이들이 당하는 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 90여 점을 선보인다.


권순영의 '고아들의 성탄 2'. 서울대미술관 제공

권순영의 '고아들의 성탄 2'. 서울대미술관 제공

권순영(47)의 성탄은 기묘하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내리는 하얀 눈이 언뜻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 캐릭터들은 죄다 꿰뚫렸거나 절단됐고, 녹아내리고 있다. 작가는 제목을 '고아들의 성탄', '가족'이라고 붙였다. 김수정(30)은 어린 시절 일방적으로 주어졌거나 빼앗겼던 인형을 천장에 매달고, 그 밑에 골프채, 빗자루, 허리띠, 파리채, 야구방망이 등 '사랑의 매'로 돌변하는 생활도구를 놓았다. 그의 설치 작품 'The war: 가장 일상적인'은 가족과 사랑이 어떻게 폭력과 결합되는지 일깨운다. 민진영(41)의 'Between roof and roof'는 아예 물리적인 공간, 집을 형상화했다. 2개의 집이 합쳐진 형태로 창문은 뒤집혀 있다. 집안에선 번쩍 번쩍 천둥이 친다. 이때 집은 온전한 보호를 제공하는 보금자리면서 바깥 세상으로 신호를 보내는 누군가에겐 고립된 공간이기도 하다.


고경호의 '넌 이 집안의 기둥이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고경호의 '넌 이 집안의 기둥이다'. 서울대미술관 제공

그리하여 아이들을 어둠 속에 가둔 '가족' 개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고경호(32)에게 "가족은 특정한 사회적 규범을 가르치고, 그것에 순응하도록 강제하는 첫 번째 공간"이다. 작가는 한 가정의 아들로서 기대되는 역할 수행 과정에서 겪어 온 괴리감을 '넌 이 집안의 기둥이다', '미술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역시 태권도' 등 작품으로 표현했다.


왕선정의 '에덴 극' 연작 중 '즐거운 나의 집'. 서울대미술관 제공

왕선정의 '에덴 극' 연작 중 '즐거운 나의 집'. 서울대미술관 제공

예술의 목적은 폭력을 고발하고, 대중을 계몽하는 데 있지 않다. 왕선정(32)은 '에덴-극' 연작으로 가부장제하 폭력을 통렬히 꼬집지만 그것 너머 계속되는 사랑의 실천과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정문경(41)은 아예 헌 아동복을 이어 붙여 '요새'를 만든다. 누군가의 몸을 감싸던 옷을 매개로 한 연대와 돌봄, 회복의 공간인 셈이다.

'할마(할머니와 엄마를 합친 신조어)'의 모습을 포착한 성희진(39)의 'grand·mother' 연작, 가정과 학교 바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은 신희수(39)의 '네버랜드-경계의 아이들'은 돌봄을 사회적 문제로 확장한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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