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우리나라(미국)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오하이오주에서 공부하고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오랫동안 미국사를 가르친 역사학자 로널드 다카키는 미국인으로 살면서 이런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가 일본에서 건너온 이민자 아버지와 사탕수수 농장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웃기도 울기도 어려운 질문을 던진 동료 미국인들에게 다카키는 미국인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국내에 출판된 다카키와 논픽션 작가 레베카 스테포프의 공저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에 따르면 그를 당황하게 만든 선입견은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오늘날 미국인의 조상을 추적해보면 3분의 1은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흑인과 중남미계 미국인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 북미 원주민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한다. 보스턴과 뉴욕, 시카고, 애틀랜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세계에 널리 알려진 대도시에서는 ‘소수자 집단’의 총합이 수적으로 백인보다 많다.
이민자의 국가에서 이상한 질문이 계속되는 이유가 뭘까? 다카키는 미국사가 ‘거대 서사’를 중심으로 쓰이고 전달돼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거대 서사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틀이다. 이에 따르면 미국에 정착한 사람들은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고 미국인은 곧 백인이다. 거대 서사는 종교적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새로운 대륙에 도착했다는 서술로 시작돼 이들을 주인공 삼아서 승리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반면 유럽 혈통이 아닌 사람들은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다카키의 표현대로라면 그들은 ‘완전히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고 때로는 ‘타자’로 분류돼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원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대륙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카 원주민, 재봉산업의 주요한 노동력이었던 아일랜드인, 서부를 가로지르는 철도를 건설한 중국인,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을 떠받친 일본인 등등 모두 외부인 취급을 당한다. 다카키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한 학자마저 “영어를 잘한다”는 불쾌한 칭찬을 듣는다.
다카키와 스테포프는 ‘역사에 없는 사람들의 미국사’에서 거대 서사가 지워버린 미국인들을 불러낸다. 흑인과 아시아인, 멕시코인, 유대인, 아일랜드인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에 이르기까지 소수자들의 역사로 미국사를 다시 쓴다. 이들이 미국에 어떻게 도착했고 어떤 혐오와 차별을 당했는지 고발한다. 동시에 이들이 미국 사회의 역동적 변화와 민주주의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소설처럼 쉽게 풀어낸다. 그것은 백인 주인공이 장애물과 역경을 극복하고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번영하는 국가를 건설하는 성공담이 아니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연대감을 형성하고 함께 전진하는 과정이다.
다카키는 캘리포니아주립대 LA캠퍼스에서 대학교 최초로 흑인사를 강의한 학자였고 1971년에는 같은 대학의 버클리 캠퍼스로 자리를 옮겨 당시에 새로 만들어진 인종·민족학과 소속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거대 서사에 사로잡힌 미국사에 다양한 인종과 민족을 포함시키려 애썼고 일제의 식민지 수탈을 지적하며 한인들의 미국 이민을 조명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개별 집단이 모여서 만든 국가 ‘다문화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세계를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97년 6월 인종문제 관련 연설을 앞둔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남긴 말은 다카키의 믿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럼요. 우리 모두 소수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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