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론이 보여주는 것... 신성한 빵을 구워도 마녀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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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폐지론이 보여주는 것... 신성한 빵을 구워도 마녀로 몰린다

입력
2022.01.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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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사회적 약자에게 돌 던지는 방법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비평 전문가 이연숙 작가는 영화, 미술, 만화 등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통해 성별화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중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글('헨젤과 그레텔' 속 할머니는 마녀라서 살해당했을까)에서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가 도시 밖 시골 제빵사였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중세 길드의 여성 참여 배제, 가부장제 밖에서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을 마녀로 몰아 죽이고 재산을 빼앗던 역사를 소개했다. 이에 '숲속 외딴집이므로 영주나 도시 제빵사 길드의 눈을 피해 화덕 설치가 가능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 화덕에 아이를 구워 먹으려 했으니까 마녀다'라는 의견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애독자님.

화덕에서 빵을 굽는다는 것의 의미

맞다. 할머니는 아이를 넣어 굽는 용도로 빵구이 화덕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이는 병을 고치는 민간요법이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반죽이 화덕에 들어가 빵으로 새로 태어나듯, 아픈 아이도 같은 과정을 거쳐 새 몸을 받아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면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는 이런 술법을 '유감주술(類感呪術)', '시밀리아 시밀리부스(similia similibus) 마법'이라고 한다. 중세 가톨릭 성인 전설에도 아픈 사람을 화덕에 넣고 구워서 고치는 이야기가 많다. 그림 동화에도 '젊게 구워진 남자'란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이 가난하고 병든 노인을 화덕에 넣고 구워서 젊고 건강하게 만들어주셨다는.

유럽에 크리스트교가 전파되면서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의 민간요법은 미신으로 몰리고 마법으로 간주되었다. 고대부터 있었던 약초와 병 치료에 대한 지식은 돌봄 노동을 주로 담당하는 성별인 여성들에게로 전수되었다. 궁정이나 도시의 의사는 성 안의 남성들이었지만 민간요법 치료사는 대개 마을 밖이나 성 밖 숲속에 혼자 사는 여성들이었다.

살기 위해 민간 치료사가 된 독신 여성

여성 혼자서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 살게 된 이유는 뭘까? 영주의 장원에서 유래한 농촌 마을 안에 살려면 영주 혹은 지주에게 땅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가족 내에 농사 지을 남성 노동력이 없는 경우 땅을 빌리기 어려웠다. 땅과 오두막은 세트다. 임대하기에 농사 지을 땅을 못 받은 사람은 마을 안에 살 집도 없게 된다.

남편 사망 후 성인 아들 없이 혼자 남거나 딸만 있는 여성은 장례식 치르고 나면 농사 짓던 땅의 소작권을 빼앗기고 살고 있던 집에서도 쫓겨났다. 결국 마을 외곽이나 숲속, 개울가 등 공유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야 했다. 이야기에 나오는 마녀가 대개 독신 할머니이거나 딸만 두고 있는 이유다.

숲속에 혼자 살게 된 여자는 숲의 산물을 최대로 이용하여 연명했다. 약초를 캐어 팔고 약초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활용해서 민간 치료사가 되었다. 약을 주면서 아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마음의 병까지 위로해주었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주술을 부려 잃어버린 물건을 찾거나 연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했다. 대가로 현금이나 물건을 받아 생계에 보탰다.

마을 사람들은 다방면에 재능이 많은 그녀들을 의지하고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필요할 때에는 지식과 경험을 빌리지만, 병이 낫지 않거나 환자가 죽을 경우에는 원한을 품었다. 천재지변을 겪거나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누명을 씌워 마녀로 몰아가곤 했다. 약값이나 치료비를 내기가 아까워서 마녀로 고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부장의 보호 없이 혼자 사는 여성이어서 만만했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에서도 엿보이는 민간요법

그렇다면 숲속 외딴집에 혼자 살면서 큰 화덕을 갖고 있는 '헨젤과 그레텔'의 할머니는 마녀도 제빵사도 아닌, 민간요법 치료사였을 수도 있겠다. 아이를 잡아 구워 먹는 것이 아니라 화덕에 넣어 굽는 척하는 치료법을 쓰는.

화덕으로 굽는 민간요법에 대한 믿음은 근대까지 이어졌다. 장편소설 '작은 아씨들'의 한 대목을 보자. 베스가 키우던 카나리아가 죽어 슬퍼하자 에이미는 희망을 갖고 말한다. "오븐에 넣어봐. 어쩌면 따뜻해져서 살아날지도 몰라."

'헨젤과 그레텔'이 실린 그림동화는 1812년 독일에서 발간되었다. 그런데 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정착한 미국에서 1868년에 발간된 '작은 아씨들'에까지 이 내용이 있을 정도라면 그림 형제 활동 당시에 화덕에 넣어 굽는 민간요법은 더 널리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의아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숲속에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에 있는 큰 화덕이 마녀라는 증거라고 다들 믿었을까?

빵과 포도주가 올라와 있는 성찬식 테이블. 위키피디아 캡처

게다가, 숲속 할머니의 집에는 이미 구워 놓은 빵이 잔뜩 있었다. 빵과 과자로 만든 집으로 보일 정도로. 할머니가 마녀라기에는 이 점도 이상하다. 크리스트교가 지배한 중세 유럽에서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예수의 몸을 상징했다. 교회는 예수의 살과 피인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식을 거행했다.

빵은 곧 예수의 몸, 몹시 신성했다

빵은 예수의 몸이기에 빵과 관련한 미신도 생겨났다. 성체용 빵을 빼돌려 실생활에 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불행을 막는 용도로 성체용 빵을 사용했다. 성체를 가루로 빻아 밭이나 정원에 뿌려서 땅을 기름지게 하고 벌레를 막으려 했다. 성체를 훔쳐가려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1214년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성체가 든 함을 자물쇠로 잠가 보관하도록 결의할 정도였다.

성체뿐만 아니다. 일반인이 만든 빵도 사람들은 신성하게 여겼다. 효모로 발효시킨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은 빵 자체가 생명을 가졌다고 믿었다. 제빵사는 제일 먼저 화덕에 넣을 빵 반죽에 십자 표시를 하여 악마의 방해를 막았다.

'빵의 재판(Ludicium offae)'이란 것도 있었다. 도둑 혐의를 받은 자는 기도와 맹세를 한 후 빵을 삼켜야 했다. 빵에는 주기도문이나 성경의 인용문이 새겨져 있었다. 용의자가 그것을 삼킬 수 있으면 무죄이고 삼키지 못하면 유죄였다. 일리는 있다. 만약 도둑이라면 빵을 앞에 두고 긴장하여 입 안의 침이 마르기 때문에 빵을 삼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럽 시골 빵 '캄파뉴' 겉면에는 십자 표시가 돼 있다. 파리바게뜨 캡처


이렇게 빵은 신성하게 여겨지고 악마를 쫓는 기능이 있다고 믿었기에 미신적 용도와 거짓말 탐지기용으로까지 사용할 정도였다. 빵은 예수였기에 당시 사람들은 마녀들이 빵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빵에 십자 표시가 찍혀 있으면 그 빵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고 믿었다.

마녀 잔치 상차림에 빵은 없다

유럽 각지에서 행해진 마녀재판 기록에 그 증거가 있다. 마녀로 몰린 사람들은 자신이 마녀 모임에 참가했다고 자백할 때 누구를 만났으며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세세히 묘사했다. 그러나 마녀 잔치의 상차림에는 빵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문에 못 이겨서 한 거짓 진술이긴 해도 마녀와 빵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하는 예다.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의 할머니는 전혀 빵을 무서워하지 않고 스스로 빵을 구웠다. 당시 상식으로 볼 때 할머니는 마녀가 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또 의아하다. 21세기에 아시아 국가에 살고 있는 나도 중세 유럽 문화사를 조금 읽은 덕분에 이 사실을 아는데, 크리스트교 문화권에 살고 있기에 책을 통해 따로 추적할 것도 없이 관련 배경 지식을 갖고 있었을 당시 독자들은 몰랐을까?

아우슈비츠 수용소. 2차 대전 후 독일인들은 '헨젤과 그레텔' 동화를 꺼림칙하게 여기고 있다. 마녀를 화덕에 넣어 불태워 죽인 동화 속 내용이 현실에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 캡처


이유는 단순하다. 중세 유럽 사람들은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할 것으로 보이는 두렵거나 낯선 존재들은 모두 크리스트교인의 아이를 잡아먹는다고 믿었다. 마녀만이 아니다. 유대인과 집시도 마찬가지로 아이를 잡아먹기에 공공의 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역사에서 자주 보이는 패턴이다. 사회에서 배척하고 혐오할 대상이 정해지면 아무 이유나 갖다 붙여도, 심지어 평소 알고 있던 사실과 모순되어도 사람들은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일단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 정해져서 돌을 집어들면, 상식적인 사고는 멈추게 되기 쉽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렸다. 윤 후보 페이스북 캡처


논리적 모순보다 중요한 돌 던지는 즐거움

요즈음 대선 후보들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맹렬한 찬성 반응에도 이 패턴은 드러난다. 잘 봐두자. 세계 191개국에서 성차별 개선과 여성인권 업무를 하는 정부기관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하지도 않고 "여가부는 한국만 두고 있는 시대착오적 기관이다! 남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외치는 자들을.

그 외 여러 가지 면에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팩트 체크를 해 준 기사들이 많은데, 그런데도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왜? 약자의 입장은 고려해줄 필요가 없으니까. 사회적 약자를 공격할 때에는 어떤 거짓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돌 던지는 것 자체가 즐거우니까.

잠자는 자를 깨울 수는 있어도 자는 척하는 자를 깨울 수는 없는 법. 여가부에 대한 팩트 체크를 안 하고 폐지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은 이 현실이 알려준다. 누가 약자 집단인지, 여가부가 왜 있어야 하는지를.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차별받고 마녀사냥당하고 있는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그 사회의 본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헨젤과 그레텔' 속 할머니 이야기만이 아니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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